▲ 홍순목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확산과 관련해 정부의 초기 대응이 부실했던 것 아닌가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들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에서 비롯됐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빗나감으로써 결국에는 ‘문형표의 저주’라는 유행어를 낳기에 이르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문형표 장관이 공무원연금 개혁 등과 관련한 복지전문가이기 때문에 보건 분야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임에도 너무 자신감을 갖고 대응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그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해 일을 처리했다면 양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경청(傾聽)의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들을 청(聽)자를 파자하면 이왕십목일심(耳王十目一心)인데 이는 귀를 임금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듣고 열 개의 눈처럼 보며 말하는 자에 대해 한마음을 다해 듣는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경청은 몸을 기울여 위와 같이 하라는 것이다. 미국 작가 올리버 홈스는 “말하는 것은 지식의 역할이고 경청, 곧 듣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말 잘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이고 지도자로서는 타고난 복이다. 하지만 잘 듣는 것은 말 잘하는 것보다는 한 수 위의 영역이다.

최근 어느 단체에서 지역의 한 기관장을 예방하는 계획을 잡았다. 그날 꼭 참석해 달라는 말과 함께 내게 하나의 역할을 줬다. 만나고자 하는 기관장이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이라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서 곤혹스러운 적이 있었다며 만약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할 경우 이를 중간에서 정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참석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줬고 적절하게 응대도 해줬다. 그 자리 이후에 나는 그가 매우 성숙하고 지혜로워졌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귀가 둘이 있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많이 듣고 적게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이 말했고, 공자도 60세를 일컬어 이순(耳順) 즉 귀가 순해진다고 했을 만큼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청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말하기의 유혹을 벗어나 경청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 워크숍에서 박지원 의원이 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돌아가면서 3분씩 이야기하자는 지도부의 말에 그는 “의원들을 전부 한 방에 몰아넣고 뭐하는 거냐”고 했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마이크를 잡으면 30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고 계속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국회의원이 3분으로 제한된 시간이 불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말하는 것보다는 경청을 목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생활화한다면 3분을 말하고 3시간을 경청한다 한들 불만은 없을 것이다.

지역의 어느 선배가 어느 식사 자리에서 내게 물었다. 왜 정치지도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그게 뭐냐며 “무엇을 하겠다”느니 “지역주민들에게 무엇을 해 주겠다”라고 말해 보라고 나를 다그쳤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무엇을 해 주겠다느니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모든 것의 근원은 지역주민들의 말을 경청하는 데 있다는 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다.

주민이 필요할 때 만나 주는 정치지도자가 없고, 억울하고 불편하고 이를 해결할 좋은 아이디어도 있는데 어디 가서 호소할 곳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으니 희망도 없고 의지도 사라지는 것이다.

 지역의 현안은 지역주민이나 정치인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리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에 있다. 지역의 현안을 정치지도자 혼자만의 생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과 지역주민의 의견을 세밀히 수렴하고 지역 밖의 제한 요인을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풀어나가는 것과는 그 결과와 평가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정치는 어떻게 이동하는가」의 한 대목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정치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제3의 물결 정치 세력들은 계속해서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정당 바깥에서 스스로를 표출하고 있다.

수많은 풀뿌리 조직을 만들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형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제3의 물결 세력들은 아직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정당은 미래의 정치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결국 미래정치를 주도하고자 하는 정당은 제3의 물결 세력들의 말에 귀를 기울(傾聽)여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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