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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
중국이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면에서도 세계 대국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항일 전쟁과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戰勝節)’ 열병식이 텐안문 광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당연히 이날 중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대내외에 과시했고 최첨단 무기를 선보였다.

‘군사굴기(軍事堀起)’를 전 세계에 선포한 것이다. 이날 처음 공개된 최신형 무기는 80% 정도에 달한다고 중국 측이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모함 킬러라는 별명을 가진 세계유일의 지대함(地對艦) 중거리 탄도 미사일 둥펑(東風·DF)21-D를 비롯해 전략핵폭격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이 공개되었다. 가공할 무기들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이 얻고자 하는 목표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편전쟁 이후 벌어진 서방세계와 일본에 의한 침략을 다시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아시아 지역에서 확실한 리더십을 갖고 일본 배척 및 미국의 영향력 축소 노력에 대해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열병식은 그들 나름의 시대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첫 열병식이 열린 1949년 10월 1일의 의미는 신(新)중국의 건국이었다.

 항일 전쟁과 국공(國共) 내전을 끝내고 출범한 붉은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은 이날 톈안문광장에 도열한 1만6천400명 장병들을 앞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오늘 성립됐다"고 선포하고, 인민군총사령관 주더(朱德)가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자 모자를 벗어 답례하여 인민군의 무력에 경의를 표했다.

건국 35년에 해당하는 1984년의 열병식 때는 3번 실각 끝에 집권한 덩샤오핑이 스스로 선택한 ‘개혁·개방 노선’이 옳았음을 과시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신무기를 비롯해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공개했다.

 물론 경제 성장을 안팎에 자랑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1999년 건국 50주년, 2009년 건국 60주년의 행사에서 장쩌민과 후진타오 전 주석은 홍치(紅旗) 자동차에 올라 자신이 중국의 최고 권력자임을 즐기는 듯이 엷은 미소를 보였다.

 2009년 이후 6년 만에 열린 이번 열병식은 시진핑 주석이 공식석상에 즐겨 입었던 양복 대신에 중산복을 입었고, 부인 펑리위안은 붉은 원피스를 입어 중국적인 분위기를 최대한 강조했다.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예포 56문이 톈안문광장 남쪽 성루인 정양문(正陽門)좌우에 늘어섰는데 이는 건국 56주년을 뜻하는 것이었고, 행사가 시작된 10시 정각 70발의 축포를 쐈다. 전승 70주년의 의미였다. 축포 발사와 동시에 광장 중심에 있는 인민영웅기념탑 앞에 대기하고 있던 국기호위대가 광장의 북쪽 편에 있는 국기계양대를 향해 121보(步)를 걸어가 오성홍기(五星紅旗)를 계양했다.

 121이란 숫자는 일본과 싸워 처절히 패배한 1894년의 청일전쟁에서 올해까지의 121년을 의미한다. 이날 시진핑 주석은 "역사를 되새기고 평화를 수호하며 미래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열병식은 그 어느 때보다 군사력 과시에 비중을 두어 이웃 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반응도 만만치가 않았다.

시진핑의 ‘중국의 꿈’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이면에 있는 중국 인민들의 고달프고 괴로운 삶으로 "강력한 중국이 아니라 개인의 안전과 생명이 보장되는 나라가 중국의 꿈"이라는 외침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우리 대통령이 이번 열병식에서 국빈 대접을 받고 시진핑 주석과의 여섯 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결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했다는 점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북핵 문제와 북한의 불확실성에 중국의 지속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한국독립운동의 주 무대였던 중국 땅에서 한·중 양국이 역사를 공유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번 열병식이 대규모 무력시위와 신무기의 경연장이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한 나라가 신무기를 보유하면 경쟁국은 더 강력한 첨단무기를 만들게 돼 있다. 일본과 북한, 중국을 지켜 본 미국 등 동북아 제세력의 군비경쟁이 격화될 조짐은 농후하다. 간디가 일찍이 말했던가.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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