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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세월 참 빠르다. 나이 들수록 백 번 실감나는 시간 흐름이다. 체감하는 시간 흐름이 나이 들수록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호기심이 없어져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로운 것에 흥미가 없어지고 늘 익숙한 생활이 반복되면 그 시간 시간마다 머리 쓸 일이 줄어들어 찰나처럼 빠르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초행길이 돌아올 때 보다 멀게 느껴지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눈에 익지 않은 초행길을 목적지에 실수 없이 도착하려면 바짝 신경 써서 살펴보고 정보를 파악해 분석해야 한다.

 갔던 길을 돌아올 때는 이미 알고 있는 길이라 뇌의 자극이 줄어서 복합 사고를 덜하게 되어 금방인 것처럼 느껴지는 원리다.

 돌이켜보면 세상이 첫 경험이라 호기심 충만했던 젊은 시절의 시간은 길었다. 나이 들면서 걸어가던 시간이 경보가 되고 달리기가 되고 KTX가 되었다. 앞으로 시간은 비행기 속도로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아쉽다.

 비슷한 나이대의 지인들과 저녁 모임을 가졌다. 우리 가끔 얼굴 보며 살자 했던 결의가 뭐가 그리 바쁜지, 봄 지나고 여름 지나 가을이 와서야 얼굴 보여주기가 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왜 그리 바쁜지 6명 전부 모이기가 이렇게 힘들었다. 중간 중간 연락이 되면 밥 한 번 먹지, 차 한 잔 하지.

시간을 조율해 보지만 약속 잡은 날이 누가 안 된다 누가 어디 갔다 해서 말만 무성했다. 그러다 가을이 오고 기온이 차분해지고 마음도 가라앉고 또 한 해가 갈 채비를 하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만사 제쳐놓고 나와라 이러다 영영 못 보게 되는 수가 있다. 강력한 메시지를 공감하며 가을 밤에 모여 앉았다.

 첫 인사가 다들 이구동성, 어찌나 시간이 빨리 흐르는지 또 한 해가 금방 지나간다며 아쉬워한다. 예전 어른들이 쏜 화살처럼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했던 말이 실감난다며 한마디씩 거든다. 덩달아 나이도 급하게 먹어가니 어차피 먹어야 하는 나이 제대로 잘 나이 들어가자고 해 숙연해졌다.

 오십 줄 접어들면 세상에 내 자리 확보해 둔 남자사람 여자사람이라 해도 다 갱년기 체험 중이라 예민해진다. 무쇠 건강도 자신할 수 없고 무쇠 가슴도 삭아져 눈물이 흔해진다. 더 따뜻하게 더 너그럽게 더 깔끔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평범한 삶을 사는 지혜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각자 제 역할이 가지는 위대함을 절실하게 경험한 나이들이라 나이를 잘 먹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안다. 가족이나 사회에서나 나이 먹은 사람이 져야하는 책임과 의무를 알기 때문이다.

내가 온전히 바르게 서야 나를 둘러싼 세상이 온전해진다 생각하면 긴장이 된다. 남에게 큰 도움을 주는 큰 본보기가 되는 위치 확보를 하지 못했다 자책할 필요가 없다. 세상에 섞이어 내 능력으로 적응했고 잘 견뎠고 내 울타리에서 가정 지켰으면 대견하다 싶다.

멀리 갈 것 없이 내 주변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았고 무임승차 하지 않았고 땀도 흘렸고 가끔 봉사도 했다. 지난 세월 돌아보며 아쉬워 말고 앞으로 자신에게 성실하자고 해서 오늘 모임의 핵심 어록이라며 공감을 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나이가 되었다. 늙어 몸도 마음도 쇠약해지는 생로병사를 막을 수는 없지만 좀 천천히 다가오도록 준비하고 싶다.

 가을 밤 모처럼 합이 되어 만난 지인들이 반갑다. 개별로는 종종 보지만 의기투합 한 번에 모이기는 쉽지 않은 바쁜 몸이다. 가끔 이렇게 모이면 건강한 에너지를 나누고 좋은 기운을 주고받으면서 오래 볼 수 있어서 좋다.

 가을이 익어가는 시간이다. 우리 시간도 늙어간다 보다는 익어간다는 말이 어울리게 잘 늙어가기, 잘 나이 먹기를 실천해 오래 오래 보자고 한다. 그렇게 잘 익어가 잘 숙성되어가는 시간을 갈무리해서 아름답게 나누자며 가을밤 모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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