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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외국의 좋은 법·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법·제도는 일본과 독일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최근에는 미국의 영향도 많이 받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외국의 법·제도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된다는 보장은 없다.

 때로는 외국의 법·제도를 우리의 문화와 환경에 맞게 수정·변경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외국의 법·제도를 도입할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수정·변경하는 경우에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지난 수십 년간 많은 법적 분쟁의 원인이 된 ‘통상임금’의 문제를 보자.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할 당시 일본의 노동기준법(제37조)을 모방하여 할증임금의 기준임금으로서의 통상임금에 관한 규정을 두었다(제46조).

그런데, 일본의 노동기준법시행규칙에서는 통상임금 산정시 제외되는 임금항목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제21조),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령에서는 이런 규정을 두지 않았다(입법과정에서 소홀히 다루어 누락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따라 어떤 임금항목(예 : 상여금, 교통비, 식비 등)이 통상임금 산정시 포함되는지 여부가 불명확하여 노사 간에 많은 법적 분쟁이 발생하였다.

심지어 행정부의 유권해석과 판례 간에 불일치를 보이기도 했고 대법원 판례입장마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노사현장에는 극심한 혼란과 갈등이 야기됐다(현재도 60여 개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제기돼 있다).

 지난 달 15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의결했는데, ‘통상임금제도의 명확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이 같은 달 16일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통상임금 산정시 제외되는 임금항목을 시행령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62년만에야 비로소 일본 노동기준법령의 원문체제를 따르기로 한 것이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이 든다.

그리고 불합리한 제도를 오랜 시간 방치해온 정부의 태만이 실망스럽다. 근로기준법 제정 시 일본의 노동기준법령의 내용을 (수정·변경 없이) 원문에 충실하게 도입했더라면 그 동안의 숱한 혼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노조법의 ‘노조의 자주성’에 관한 규정을 보자. 이 규정도 일본 노조법을 모방한 것인데, 일본 노조법 제2조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하는 경우’로 4가지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노조법 제2조는 여기에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를 추가하여 5가지 사유로 규정하였다. 즉, 일본 노조법 제2조에 없는 사유를 ‘창작하여(?)’ 추가로 삽입한 것이다. 이 규정에 따라 조합원이 6만 명이 넘고 15년간 적법하게 활동해온 전교조가 해직자 9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다고 하여 정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게 됐다.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과 법적 다툼이 현재도 진행 중이다(전교조의 법외노조통보 취소 소송이 서울고등법원(제7부)에서 심리 중이다).

 입법(법을 만드는 일), 행정(법을 집행하는 일), 사법(법으로써 심판하는 일)이 모두 중요하지만 사실 입법이 제일 중요하다. 왜냐하면, 잘못 만들어진 법의 오류를 행정 또는 사법으로 교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법과정에서 신중한 검토를 통해 예상되는 문제점들이 최대한 걸러져야 한다. 그리고 외국의 법·제도를 도입할 때에는 가급적 원문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즉, 이왕 베끼려면 제대로 베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법은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아서 만일 그 일부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수정·변경하게 되면 법질서의 원활한 작동에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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