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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자 인천시 여성가족국장
성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으며, 특히 피해자에게 신체적, 심리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되어야만 하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사회적 편견의 벽에 가로막혀 또 다른 유형의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 이들은 다른 폭력이나 사건사고의 피해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거나 후유증으로 괴로움을 느끼며 고통 받기도 한다.

 반면, 가해자들은 ‘만취로 인한 심신미약, 의도치 않은 일, 실수, 상대방 탓...’ 등을 운운하며 범죄행위를 합리화하거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때로는 우리사회의 가부장적인 성문화를 탓하기도 한다.

 2014년 경찰청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성범죄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3년 성폭력 발생건수는 2만8천786건으로 2007년의 1만4천229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하였는데 성폭력범죄 신고율이 12.3%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성폭력 피해로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정부에서도 각종 대책들을 마련하고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 공소시효 배제와 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 친고죄 폐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법정형 상향 조정 등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많은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또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상담소, 쉼터, 통합지원센터 등 전문기관을 설치하여 피해자를 위한 통합 서비스 지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느끼는 체감도가 낮은 이유는 일상에서 겪게 되는 또 다른 피해 때문이다. 가해자 처벌 요구에 대한 강력한 목소리에 비해 피해자 지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미약한 현실이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흉악한 성폭력 사건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일상의 성폭력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무거운 처벌을 피하려는 가해자들의 협박과 압력에 못 이겨 합의를 하게 되는 피해자들도 늘고 있다.

 특히 성인여성 피해자의 경우, 소위 ‘꽃뱀’ 시나리오를 의심하는 편견 때문에 피해를 인정받기가 더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그럴만한 구실을 먼저 제공했겠지’ 이런 무의미한 편견과 가시 돋친 주변의 비난 또한 피해자들을 더 멍들게 한다.

오죽하면 한 성폭력피해자 자조모임은 단체명을 ‘이후’라고 지었는데 성폭력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에 살아가는 게 더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불리길 바라는 이들은 커다란 상처와 고통을 껴안은 채 세상을 향해 외친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피하고 숨어야 하는 거죠?’

 매년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1주간은 법률로 규정되어 있는 성폭력 추방주간으로 우리시도 다양한 행사와 캠페인 등을 실시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성폭력 추방을 위해서는 성폭력 근절과 예방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주위의 따뜻한 시선이 어우러져야 한다.

 또한 피해자 스스로도 상처를 덮어두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면 더 큰 아픔과 후유증을 남길 수 있으므로 전문기관을 찾아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시도 병원 및 경찰청과 연계하여 해바라기센터를 24시간 운영하고 있으며, 상담은 물론 폭력 신고부터 수사지원, 증거채취, 피해자 진료 등 의료지원과 무료 법률 구조 지원 등 원스톱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과 지적장애인에게는 아동 전문 해바라기센터를 통해 의학진단과 치료, 심리치료, 법률지원 등 종합 지원을 하는 등 성폭력 상담소, 피해자 쉼터, 여성긴급전화 1366 등 10개소의 전문기관을 설치하여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작년 한 해만도 약 2만5천 건의 상담과 각종 지원을 제공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상처를 치유 받고 삶의 희망을 되찾아 가고 있다.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며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본인의 잘못으로 벌어지지 않은 일 때문에 행복의 권리를 침해당하거나 이후의 인생을 힘들게 사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성폭력 추방주간을 계기로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를 보내고 편견 없는 지지와 공감을 나누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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