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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지난 26일 오전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한 제약회사 굴뚝에서 하얀 연기(백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어둡고 침침한 도심의 한 골목,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알몸의 사나이가 수증기 속으로 몸을 감춘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이다. 영화 속 미래의 도시는 이처럼 희뿌연 수증기에 가려진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곤 한다. <관련 기사 16면>

기온이 낮아지는 겨울, 현실의 도시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워를 피해 이른 새벽 파주 교하신도시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김새롬(33·여)씨는 인근 열병합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백연) 때문에 여러 번 아찔한 경험을 했다.

 습도가 높은 날에는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백연으로 차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영하의 날씨에는 도로에 살얼음마저 얼 정도다.



부천테크노파크에 근무하는 박세훈(38)씨는 편도 1차로 소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열병합발전소 때문에 신경쇠약을 호소할 정도다.

박 씨는 "매년 겨울이면 인근 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중기 때문에 창문을 열 수도 없다"며 "잿빛 하늘과 사무실 창문에 서린 수증기로 기분마저 가라앉는다"고 했다.

3년 전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 온 안모(40·여)씨는 두 살 난 둘째아이의 아토피가 심해져 걱정이다.

처음엔 새집증후군과 겨울철 건조한 날씨 탓으로만 여겼는데, 최근 정도가 심해지자 아파트 단지 인근에 위치한 지역난방 사업장과 2개의 대형 제약회사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백연의 영향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불안하기만 하다.

 이미 세종신도시에서 유사한 민원이 발생해 열병합발전소에 백연 저감장치를 설치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백연 때문에 힘든 건 발생지역 주변에 사는 주민들뿐만이 아니다. 인천소방본부도 겨울철만 되면 걱정부터 앞선다. 도심에만 5개 열병합발전소가 가동되면서 매년 겨울철 백연으로 인한 화재 오인신고가 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3개월간 인천 관내 소방서에 접수된 993건의 화재 오인신고 중 백연 등 연기로 인한 신고가 316건으로 가장 많았다.

또 이곳 발전소 인근을 지나는 행인들 역시 백연에 대한 불쾌감을 나타낸다. 냉방병의 원인균으로 알려진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인천보건환경연구원이 지난 1월부터 10월 말 현재까지 인천지역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된 냉각탑의 냉각수를 검사한 결과 730건 중 레지오넬라균이 검출된 사례는 66건(9%)에 달한다.

이 중 냉각탑 청소와 소독이 필요한 요주의 범위(1만~100만CFU/L)에 든 검출 건수만 23건이다. 하지만 하루 수백t의 백연을 내뿜고 있는 발전소와 지역난방, 공장 등은 검사 대상도 아니다.

정부는 에너지효율 극대화와 자립화를 목적으로 집단에너지 사업을 추진, 소규모 열병합발전소와 지역냉난방 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집단에너지 사업은 총 86개 사업자가 114개 사업장에서 운영허가를 받았다. 이 중 70%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겨울철 도심 생활 속 깊숙이 번지고 있는 백연에 대한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건태 기자 jus216@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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