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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
선거의 계절이 도래했다. 유권자가 어떤 심판(審判)을 선택할 것인지 오리무중이라는 것이 다수다. 정권 심판론, 국회 심판론, 야당 심판론, 현역 심판론 등 갖가지 심판론이 큰 차이 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권을 심판하고 싶지만 야당 하는 걸 보면 미덥지 못하다", "국회를 심판해야 하는데 정치권 전체가 이 모양이니…"하면서 혀를 차고, "야당을 심판하려니 여당 하는 짓도 한심하다"는 견해 역시 만만치가 않고, "현역 심판은 꼭 해야 하는데, 신인이라고 해 봐야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것이다.

 정당에 대해서도 그렇다. 어차피 정당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데, 기존 정당이나 새 정당이나 하는 꼬락서니가 영 아니다.

우리 정당들의 이런 모습은 별로 낯설지 않다. 필자가 처음 들어본 정당은 이승만정부를 떠받들던 자유당이고, 이에 맞섰던 야당은 ‘못살겠다 갈아 보자’던 민주당이었다. 투표권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 봐도 여당은 기득권 세력에 거수기 역할하는 유명 인사(?)들 일색이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통일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등 숱한 정당이 명멸했다.

이런 모습에 대해 영·미의 전통적 양당 체제를 민주정치의 조건으로 보는 이들은 ‘후진적 행태’라고 개탄했다. 이미 창당의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는 미국의 민주당이나 영국의 보수당, 독일의 사민당을 생각해 보면 그런 평가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확대돼 정치와 사회가 가까워지고 시민정치 참여가 활발해지는 세상이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4·13 총선은 다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핵심인 안철수 의원이 ‘야권 연대는 없다’고 했으니 일단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누가 제1야당이 될 것인가를 놓고 싸우는 걸 보면 3파전 양상일 것이다. 결국 ‘이번에는 제대로 심판해 보자’는 건 물 건너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거대 여당의 출현은 불 보듯 뻔한 걸까?

 주지하다시피 동북아 3국 가운데 우리나라만 빼놓고 중국과 일본은 확실한 일당(一黨)체제다. 중국의 공산당 체제는 그렇지만 일본이 왜 일당 체제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현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의 자민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구 집권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집권 대물림 시스템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매우 정교하고 탄탄해 가까운 장래에 자민당이 권력을 내놓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더구나 중국이나 일본은 모두 발전적 승계자를 훈련시키며 순조롭게 후계 구도를 구축하고 있다. 일관성 있는 정책기조 하에서 지속적인 국정 운영의 틀이 만들어져 있다.

한마디로 국가 리더십이 일당 체제 하에서 양성된다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들 체제에서 적극적 시민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단점도 크다. 우리는 그들에 비해 수평적 정권 교체를 경험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8년 남짓 사이에 정치와 사회는 심각히 괴리돼 가는 현상이 나날이 짙어지고 있다. 야권이 분열해서가 아니다. 국회 과반을 조금 넘긴 여당 체제에서 벌어진 일이다.

 빨간색, 파란색, 녹색, 노란색 깃발이 곧 거리를 난무할 것이다. 결과는 알 수 없으나 누가 제1야당이 되느냐는 결코 국민적 관심일 수 없다. 그들끼리 리그에서 호남이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준다고 희희낙락해 봐야 희망으로 가는 길이 열릴 리 만무하다. 정권 교체라는 뜬구름 잡는 구호부터 그렇고, ‘친노’니 ‘중도’니 하는 수사부터 못마땅하다는 것이 민심인 줄 왜 모르는가?

 한국에서 일당 체제가 나타나면 동북아 3국은 모두가 같아진다. 적어도 외형은 똑같다. 그렇다고 우리만이 내실을 기해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해소한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단점의 극대화로 치달을 수 있다. 적어도 지난 8년의 경험을 보면 확실해진다.

심판의 계절인데 본령은 사라지고 도토리 키 재기 선택으로 끝난다면 야권의 지도자를 자처하고 정권 교체 운운하면서 총선을 치른 그들은 또 어떤 말로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것인가? 늦기 전에 대통합으로 가지 않으면 참으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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