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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10일 정부가 내린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논란이 많다. 논란이 일자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13일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사용됐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는데, 야당에서는 "증거가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우리 정부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했다는 것을 시인한 것으로, 심각한 국제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홍 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에 참석해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 임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됐다는 확증은 없다고 한 발 물러서자 ‘번복 논란’에 따른 비판마저 제기됐다.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통해 국민 단합과 초당적 협조를 강조했지만 논란이 쉽게 진정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부의 급작스러운 개성공단 중단 조치로 인한 우리 측 피해 규모가 무려 3조 원을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이 "이번 사태는 모두 정부 탓"이라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법적 소송도 고려하겠다고 한다.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의 판단은 어떻게 나올까?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따른 ‘통치행위’로 보아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견해가 있다.

또한 종전 판례의 태도를 고려하면 이번에도 입주기업인들이 정부를 상대로 승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렇지만 통치행위이론은 구시대의 법리이고 정부의 중단 조치에 법적 하자가 있으므로 입주기업인들이 승소하리라는 견해도 있다.

 아무튼 지금 시점에서 법원의 판단을 예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송이 제기되면 중단 조치의 타당성 등을 둘러싸고 많은 공방이 벌어질 것이고, 대법원까지 가게 되면 최종 판단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중단 조치의 내용적 타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 여기에서는 몇 가지 절차적 사항에 대해서만 보고자 한다.

 먼저 헌법 제76조가 규정하는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은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발할 수 있으므로, 중단 조치는 긴급명령으로서의 합법성을 지닐 수 없다. 또한 남북교류협력법 제17조는 협력사업의 정지를 명하려면 ‘청문을 실시하여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청문 절차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중단 조치는 절차적 합법성이 의심된다.

 한편, 헌법 제89조 제2호는 ‘중요한 대외정책’에 대해서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91조 제1항은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대외정책·군사정책과 국내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중단 조치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안전보장회의법 제7조의 2 제1항은 "(전체)회의에서 위임한 사항을 처리하기 위하여 상임위원회를 둔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개성공단 중단 결정은 그 중요도로 보아 상임위가 아닌 전체회의에서 논의됐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중단 논의를 전체회의에서 상임위에 위임했는지도 의문이다.

 보편적인 법학이론으로 ‘정당한 법의 절차(due process of law)’의 원리가 있는데,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다. 민주주의 원리는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데, 법치주의는 국가의 행정은 반드시 법적 근거와 절차에 따라 행해져야 함을 요구한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같은 중요한 결정이 어떤 법적 근거와 절차에 따라 행해졌는지 불분명해 보인다. 인류가 발전시켜 온 최대의 가치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법의 절차’ 내지 ‘적법절차의 원리’가 존중돼야 한다. 후세의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도 정부가 행하는 행정절차는 법에 따라 투명하게 이뤄지고 관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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