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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건태 사회부장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최근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4천389명의 행적을 필사하는 범국민운동에 나선 서울시의회가 내건 슬로건이다. 앞서 서울시의회는 각 학교 도서관에 적어도 친일인명사전 1질(3권) 정도는 비치되도록 1억7천여만 원의 교육청 예산을 증액했다.

8년 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이 여태껏 교육 현장인 학교에조차 비치 안 된 게 이상할 정도다.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 현재 서울시내 583개 중·고교 중 92%인 539개 학교가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했다.

이를 두고 보수성향의 학부모단체는 서울시의회와 시교육청을 친일인명사전 구매를 강요했다며 검찰에 고발까지 한 상태다.

친일인명사전은 2001년 처음 편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작업은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됐다. 책이 출간되기까지 무려 18년이 걸린 셈이다. 당시 편찬위원으로 참여한 전문가만 230명. 40명 안팎의 국정교과서 집필진과는 비교도 안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친일인명사전은 인천에 고작 3개 공공도서관에나 비치돼 있을 정도다. 서울과 경기도에선 진작에 실시된 중학생 무상급식도 ‘하자’, ‘말자’ 말들이 많은데, 친일인명사전을 학교에 비치하자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천에는 유독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많다. 단순히 출생지만을 놓고 분류했을 때에도 인천 출신은 당시 경기도였던 강화와 부평, 제물포까지 포함해 22명에 달한다. 여기에 인천에서 사업을 했거나 종교와 예술활동, 경찰과 관료 등을 지낸 인사 등을 합하면 그 수는 족히 200~300명이 넘는다.

공교롭게도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던 해 경인일보가 펴낸 「인천인물 100人」에도 중복된 인물이 상당수 달했다. 당시 인천 출신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소개된 100인 중에는 초대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과 신학박사 갈홍기, 교육자 서은숙, 화가 김은호, 극작가 함세덕 등 친일인명사전에 반민족행위자로 규명된 인사들이 포함됐다. 인천 인물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인천의 한 원로 사학자는 얼마 안 되는 기록문서 몇 장만으로 이들을 반민족주의자로 몰아세울 수 없다는 의외의 반응을 보여 의아했다.

 그간 그가 보여 준 행보를 보면 누구보다 이 일에 발벗고 나설 줄 알았다. 그는 "개항기 근대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인천은 일제 식민지 하에서 수탈의 창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일제강점기 자의든 타의든 일본인들 편에서 부역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와서 그들의 친일행적을 따져 뭐 하겠느냐는 식이다. 보수성향의 학부모들이 ‘국론 분열’을 이유로 서울시의회를 고발한 것과 같은 논리로 비춰진다.

그러면서 당신 자신도 일제 때 아버지가 일본인 밑에서 부역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며 꺼내기 힘들었을 말도 했다.

그동안 그는 인천에 남아 있는 일본식 지명을 바꾸려 많은 노력을 해 왔고, 지금도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송도(松島)’다. 송도는 일본 미아가현의 지명이기도 하지만 일제 때 인천항을 드나들던 일본 군함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천에는 송도란 이름이 경제자유구역 1호인 국제도시에도 쓰이고, 그와 떨어져 있는 수인선 송도역에도 쓰인다.

 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일컫는 ‘도산(桃山)’이란 이름을 아직도 도로명으로 쓰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들 일제의 잔재도 아직 청산하지 못하는데, 누구한테 ‘친일파’라며 돌팔매질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위안부 할머니들의 애환을 다룬 영화 ‘귀향’을 보면서 머릿속은 온통 기억할 것과 지워야 할 것에 판단이 서지 않아 복잡했다.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그와 같은 역사가 현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새겨진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란 문구는 폴란드나 우리나 공통된 역사적 교훈이란 것이다.

 영화에서 "내가 그 미친년이다"라고 외친 할머니(손숙 분)처럼 지우고 싶었던 기억을 끄집어 내는 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부끄러운 과거를 덮으려고만 한다면 일제 식민지를 경험한 이 사회의 트라우마는 결코 치유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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