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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을 봤다. 제작 착수 후 14년 만에 7만5천여 명의 후원금으로 만든 화제의 영화라기에 바쁜 시간을 내 극장을 찾았는데 영화가 끝날 때 받았던 먹먹한 느낌이 지금껏 가슴에 남아 있다.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으로 본격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 문제가 1965년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됐다는 입장을, 우리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입장을 내세워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1년 헌법재판소가 1965년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일 간 해석상의 분쟁에 정부가 해결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는 것(부작위)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헌재 2011.8.30. 2006헌바788).

이에 따라 정부는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 가능성’, ‘외교관계의 불편’ 등을 이유로 한 종래의 소극적 태도를 바꿔 일본 측과 협의를 진행했는데 입장 차이가 현격했다.

 그런데 작년 11월 초 한일 정상회담에서 ‘조속한 타결을 위한 합의 가속화’에 합의한 뒤인 12월 28일 양국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해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일본 총리의 사죄와 반성 ▶일본 정부 예산으로 지원사업(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이 재단에 10억 엔(약 97억 원) 출연) 등을 골자로 한 타결안에 합의했다.

 이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과 많은 시민들이 "지난 25년간 일본 대사관 앞에서 눈비를 맞으며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는데, 그게 무슨 합의냐?", "정부가 피해자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시간에 쫓기듯 졸속으로 합의할 수 있느냐?"며 반발했다.

정부·여당은 ‘역사의 아픔을 달래는 의미 있는 외교적 성과’라는 입장을 표명했는데, 최근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 위안부라는 표현마저 삭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 정부는 피해자의 주장을 수용하고 진실·정의·배상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희생자 중심의 접근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는데, 이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피해자 측이 요구한 핵심 사항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우리나라 외교부가 아니라 일본 외무성 한국지부인가?", "외교부가 아니라 왜교부"라는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사실 위안부 합의는 내용 면·절차 면에서 법적 논란이 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지적한 바(협정 해석상의 분쟁 해결 노력 등)를 제대로 실현·실행하지 않고 마무리한 합의는 위헌이라는 견해도 있고, 피해자의 의견 수렴 및 반영이 이뤄지지 않아 무효라는 관점도 있다.

특히 위안부 합의의 법적 성질에 대해 의문이 큰데, 이 합의를 ‘조약(條約)’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가 간 권리의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문서로 작성된 것도 아니며, 양국 정상의 공식적 승인 절차도 없었고, 국회의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니어서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된 내용은 양국 외교당국의 (단순한)‘선언’ 내지 ‘발표’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대법원이나 일본 최고재판소나 국가 간의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없애지 못한다고 판단했는데, 외교부 장관은 피해자들의 위임이나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니어서 국가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청구권 포기를 합의하거나 선언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대판 2012.5.24, 2009다68620 참조).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위안부 합의에 법적 효력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발표에 포함된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도 규범적 의미와 무관한 단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한일 양국 국민들과 전 세계 지성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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