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jpg
▲ 신효성 소설가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한 것이다’라는 자동차 광고 문구를 봤다. 대형 세단 승용차의 위용과 타는 사람의 소프트한 카리스마를 한 문구에 담은 카피다. 흔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말에 꽂힌 것은 불현듯 그녀가 떠올라서다.

 듣는 대로 이행하게 되는 나이, 거스르지 않고 도리에 따르는 나이라 해서 이순(耳順)이라 부르는 60세가 되면서 문득 든 생각이 모질게 살았구나, 싶더라고 했다. 철 난 거지 뒤늦게. 철은 철에 맞아야 기득권이 있는데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철이 들었으니 지난 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네. 그래서 환갑의 나이에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왔으니 인생 새로 시작하자고 다짐을 했다 한다.

 그녀, 100세 시대에 노인이라고 칭하면 실례가 될 67세다. 배낭 하나 메고 세상과 부대끼며 구르다 보니 모난 성격이 깎여서 둥글어져 가는 중이라 한다. 대단한 분이다. 오지여행도, 낯선 해외도 개척자처럼 혼자 다닌다. 젊은이도 힘든 난코스를 재미로 흥미로 도전하면서 새로운 인연과 경험을 기대하며 시작하는 여행지의 하루가 늘 설렌다 한다.

 악착으로 움켜잡고 올라왔던 자리는 물러나는 순간, 한순간에 스러지는 거품이었다. 허망함에 분이 났고 돌아볼 겨를이 없어 관심 밖이었던 주변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인사치레로 던지는 퇴임 위로 인사말에는 성의 없음이 보여 마음이 상했다.

 덜 효율적이고 덜 노력하고 게다가 능력까지 딸리는 주변 사람들은 업무로나 지인으로나 가치 없음 쪽에 가까워 냉정했었다. 돌이켜보니 인간미 털끝만큼도 없는 나를 동료로 지인으로 받아준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부끄러워졌다 한다. 하는 일마다 삐거덕거리다 주저앉아 차라리 백수로 사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여겨 내쳤던 남편도 그립고, 경제적 책임을 다해 키운 자식들도 천 길 거리감이 있어서 따뜻한 가슴이 그리웠다.

 맹수처럼 야생을 버텨 혹한기 같았던 시간을 살아냈는데 이제는 온전히 나도 주변도 감싸주면서 따뜻하게 살아보자는 생각이 간절했다. 보너스가 나와도, 연차휴가가 나와도 쓸 줄,도 쉴 줄도 몰랐던 삶이라 막상 어떻게 무엇으로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연히 TV 프로그램에서 사막 랠리를 하는 노익장을 보고 나서 무작정 인생길 도보를 시작했다. 인생여행자로 내디딘 첫 출발은 두렵고 서툴러 매순간 위기였고 외로움과의 동행이었다.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정도 생겨나더라. 길에서 만난 숱한 사람들과 자연과 갈등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는 말이지요. 강함은 균형을 유지하고 조화로울 때 빛을 발하고, 편협이 아닌 옳음을 간파할 수 있는 눈으로 도전해서 이뤄 나가는 것이라 한 그분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분은 지금 지구 어느 땅 위를 씩씩하게 걷고 있을 것이다. 어린 동생을 위해 본인의 인생 도약을 포기하고 뒷바라지한 언니에게, 집안 살림 잘 해 준 도우미 할머니에게 평생 연금이라 생각하고 매달 용돈을 자동이체해 준다는 이야기도 감동이었다. 괴팍스러운 성격 받아준 대가를 뒤늦게 철들어 지불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절대 고맙다는 말 따위는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한다. 늦었지만 받은 것 다 돌려주고 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이기적인 내 계산법이라며 웃었다. 그 웃음이 편안해 보였다.

 세상은 강해야 살아남는다고 가르친다. 굽히고 숙이면 얕잡혀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유연하고 따뜻한 가슴이 있어서 사람이 사람다운 것이고, 결국엔 이 숭고한 교감이 있어서 사람은 강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적 감성으로 세상을 동화 속 이야기인 양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물렁한 나태는 경계해야겠지만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들을 세상 도처에서 만나고 싶다. 간절히.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