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번성기 연평도 파시.
중국 어선의 쌍끌이식 불법 조업으로 씨가 마르고 있는 ‘연평도 꽃게’가 연일 회자되고 있다.

출하량이 매년 급속도로 줄어드는 꽃게를 보며 망연자실해 하는 어민들도,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안타까움도 커져만 가고 있다.

나이가 지긋한 연평도 어민들은 씁쓸하게도 수십 년 전 비슷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1940년대 말 성황을 이뤘다 대형어선의 마구잡이식 고기잡이로 1960년대 이후 종적을 감춘 ‘조기 파시(波市)’다. 파시란 바다에서 열리는 어시장을 말한다.

일찍이 연평도는 흑산도파시, 위도파시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파시로 꼽혔다.

동력선과 어구·어망의 개량으로 연평도 조기 어획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연평도는 ‘사흘 벌어 1년을 먹고 산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 1950년대의 연평도.
어선들이 갑판 위까지 가득 조기를 싣고 들어오면 곧바로 판매가 이뤄졌고, 작은 섬마을은 선박수리를 위한 공장과 상가로 북적였다.

연평도 조기 어획량은 1946년 2만2천500t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1960년대 1만t으로 줄어들며 파시가 막을 내렸다.

유자망, 기선저인망 등의 어구를 갖춘 대형화된 동력선들이 마구잡이 어획으로 참조기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지난달 참조기 치어 35만 마리를 포함해 2013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125만 마리를 연평도를 비롯해 인천 연안에 방류하는 등 참조기 자원 회복과 제2의 연평도 파시 복원에 나서고 있다.

이재훈 기자 lj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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