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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사회부장
지난주 목요일, 인천시청 재난안전본부 회의실 분위기는 참 망측했다. 고충민원을 해결코자 연 회의가 해괴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재난예방과·시설계획과·항만공항시설과·하수과·수질환경과·경제자유구역청 개발계획총괄과, 고충민원을 풀어야 할 책임부서 과장이나 팀장들이 다 모인 자리였다. ‘침 먹은 지네’인 양 그 공무원들의 입은 당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그들의 엉뚱한 행세는 든적스럽기까지 했다. 회의가 아니라 훼방이었다. 그 돌아가는 꼬락서니에 회의를 주관한 국민권익위원회 사무관은 못 올 데 온 것처럼 뻘쭘한 기색이었다. 회의의 긴장감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을 만큼 버름했다.

 ‘민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까.’ 잔뜩 기대하고 나온 주민대표들은 가슴 저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누르느라 긴 한숨을 연신 내뱉었다. "도대체 지금까지 (공무원)당신네들이 뭘 했습니까?" 주민 한 명이 버럭 울분을 터트렸다.

 때는 1997년 7월. 백중사리 바닷물이 치고 들어오면서 남구 백운주택 6가구가 물에 잠기고, 8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설상가상, 피해 복구를 따지며 시위하던 이재민 H(당시 41세)씨 등 2명이 익사했다.

 남구청장은 인천시장에게 대책을 보고했다. 매립으로 항구적인 수방대책을 세우자는 제안이었다. 당장 예산이 없던 남구청장은 민간업체인 승주종합개발㈜에 매달렸다. 이 업체는 그 다음 해 12월 해양수산부의 제1차 공유수면 매립기본계획 반영 고시까지 받아냈다. 매립 목적은 갯골수로 47만8천㎡에 수방대책과 물류시설 터 조성이었다.

 남구와 승주는 1999년 10월 용현5동 주민센터에서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유수지 축소에 따른 배수펌프장 조기 설치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주민 2천116명이 들고 일어났다. 악취 민원이 늘 있는 유수지 조성의 반대였다. 2000년 2월, 시는 갯골수로 전체 46만9천869㎡를 도시계획시설(유수지) 고시로 밀어붙였다. 그해 6월 주민 150여 명은 시청 앞 광장으로 뛰쳐나와 유수지 전체 매립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묵묵부답. 시는 연안교 아래쪽 갯골수로(학익유수지)에 대해 도시계획시설 실시설계 인가를 해수부로부터 받아냈다. 이해당사자인 승주가 연안교 위쪽 5만3천400㎡를 매립하고자 할 때 시는 행정절차에 협조한다는 조건이었다. 시는 2005년 3월 친수공간 232억 원과 수로 정비 119억 원을 들여 학익유수지를 조성했다. 손이 안 닿은 연안교 위쪽은 여전히 악취가 진동했다. 2011년 4월 주민 1천302명은 약속대로 연안교 위쪽도 매립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인천시장에게 냈다.

 시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자 주민 2천625명은 2013년 6월 또다시 권익위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민원은 풀리는 듯했다. 2014년 8월 국익위 중재로 시장과 승주, 주민대표 4자는 환경개선사업 협약서에 서명했다. 연안교 위쪽을 매립해 공공 및 유통시설 터로 조성하는 데 시가 협조한다는 내용이었다. 협약서는 한낱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았다. 시는 온갖 꼬투리로 승주의 매립면허 신청을 반려했다.

 뒷전에서 시는 꿍꿍이셈을 했다. 350억 원을 들인 학익유수지를 ‘도시형 첨단물류단지 조성’이란 이름으로 매립을 모색하고 있었다. 수년 동안 환경개선사업을 벌였으나 한계가 있다는 명목이었지만 속내는 달랐다. 매립한 학익유수지 36만㎡를 물류단지로 팔 때 2천520억 원을 번다며 계산기를 만지작거렸다. 기본계획부터 환경영향평가, 수리 검토까지 민간업체가 진행했던 매립사업을 가로채 돈을 벌겠다는 속셈이었다.

 승주는 갯골수로 매립을 추진하면서 지금까지 30억여 원을 썼다. 이젠 도산 직전이다. 권익위가 지난주 시청 재난안전본부 회의실에서 고충민원 해결 방안 회의를 주관한 이유였다.

 초상지풍(草上之風). 리더의 덕은 바람과 같으며, 백성의 덕은 풀과 같다는 뜻이다. 악한 바람은 풀을 악의 소굴로 쏠리게 하는 법이다. 바른 사회는 바른 리더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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