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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민중을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를 내 자식의 일처럼 생각하는 건 위선이다." 등등. 이런 몰상식한 소리(‘말’이라고 표현하기도 부적절하다)가 행정고시 출신 고위공무원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온 국민이 경악했다.

발언 당사자가 바로 우리나라의 교육정책 마련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라고 하니, 이 정부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누리과정, 대학 구조개혁, 특성화대학,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교과 개편 등의 논란 많은 교육정책들이 도대체 어떤 철학과 관점을 기초로 해 마련된 것인지 심각한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을 보면 제7조 제1항에서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1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 내용을 고려하면, 국민을 개·돼지로 지칭하고 신분제를 옹호한 그의 발언은 공무원의 본분을 위배해 국민을 모욕한 ‘반헌법적 행위’임에 틀림없다.

 인사혁신처 중앙인사위원회가 성난 민심을 고려해 그를 파면하기로 결의했지만, 한 사람의 공무원을 솎아내는 것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무원들의 의식 속에 헌법정신(주권자인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민주주의 정신)을 각인하는 일이다.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존재 이념과 국가 운영의 중요 원칙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모든 공무원은 헌법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이해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간부공무원을 선발하는 현행 5급 공무원 공채시험(종전 ‘행정고시’) 과목에서 ‘헌법’ 과목이 배제돼 있다는 점은 놀랍고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행히 내년부터 5급 공채시험 1차 시험과목으로 ‘헌법’과목이 도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시험은 25문항의 객관식으로 출제되고(시험 시간은 25분), 60점 이상을 득점하면 통과하는 방식이라고 한다(PASS/FAIL방식).

이런 정도의 가벼운 시험만으로 공무원들의 의식 속에 헌법정신을 각인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데, 시험의 당락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헌법’ 과목의 비중을 증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와 더불어 5급 공채 시험 과목에 헌법뿐 아니라 행정법, 민법, 형법, 상법, 노동법 등 주요 법률 과목들을 포함시킬 필요도 있다. 왜냐하면, 법치행정주의(행정은 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민주국가의 원리) 하에서 행정부 공무원들이 법을 올바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법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법률들이 정부 입법 방식(법안 발의를 행정부가 하는 방식)을 통해 제정 또는 개정되기 때문에 법안 작성자인 행정부 공무원들이 전문적 법률 지식을 지녀야 한다. 정부의 입법 예고나 발의 법안을 보면 기본적 법리에 위배된 내용(위헌성 등)을 담고 있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 원인은 대개 법률 지식이 미흡한 공무원이 법안을 작성한 데 있다. 훗날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수반되며 큰 혼란을 초래하기 일쑤이다.

따라서, 법치 행정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정부 발의 법안이 법리에 충실하게 마련되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권익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행정부 공무원들이 헌법 외의 주요 법률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대거 양산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5급 공채시험 응시 자격을 변호사 자격 소지자에게만 부여하는 방안 또는 변호사 자격 소지자에게 가점을 부여하거나 일부 시험 과목을 면제해 주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법률전문가가 행정부에 많이 진출하는 것이 법치 행정주의의 발전과 국가의 선진화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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