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행정학박사.jpg
▲ 최원영 행정학박사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가 때로는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아마도 ‘나’ 자신의 삶이 무척 힘들 때 특히 더 많아질 겁니다. 그렇게 삶이 힘들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가 떠오르기도 할 텐데, 아마도 교만한 삶의 태도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학자로 명성이 자자한 어빙 교수가 대영박물관에서 책을 읽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희한한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꿈에서도 박물관에 있었는데, 박물관의 벽에 석학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의 석학들이 한 명씩 걸어 나오더니, 어빙 교수에게 ‘내 옷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러면서 어빙 교수가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겨 갔습니다. 어빙 교수는 이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교수님은 이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박식하다고 칭찬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꿈속의 석학들이 이미 발견해 놓은 지식들을 잠시 빌려 쓰고 있었던 것이지, 자신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결국 선배 학자들이 입고 있던 옷을 잠시 빌려 입은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 겁니다. 그때부터 어빙 교수는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과 호흡하게 됐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런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 어느 곳에서나 혹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의 상황에 맞춰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너그러움이 생길 겁니다.

 이태리 출신의 테너 가수로 유명한 엔리코 카루소의 삶이 그랬습니다. 카루소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더해서 음역 또한 매우 넓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가수였습니다.

 어느 날, 카루소가 옛 친구와 함께 많은 손님들로 북적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갔습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이 카루소임을 알아보고 주방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주방장님, 카루소 선생님이 오셨어요"라고 말이죠. 그러자 곧 주방장이 달려와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카루소 선생님, 여기서 선생님을 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평소에 선생님의 노래를 듣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그러자 카루소가 "그럼 지금 당장 여기서 들려 드릴게요"라고 하자, 주방장이 자신의 옷차림이 정장 차림이 아니라서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고, 카루소는 "괜찮습니다. 노래를 듣는데 옷차림이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주방장께서 노래를 듣고 싶다는 그 아름다운 마음입니다"라고 말한 뒤, 멋지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레스토랑 안의 손님들 역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카루소임을 알고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줬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식사를 하던 친구가 카루소에게 "아니, 왜 이런 곳에서 노래를 부르냐?"고 질책을 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카루소의 대답은 그가 진정한 거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주방장은 내 노래를 듣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네. 그래서 내가 주방장의 소원대로 노래를 부른 게 무슨 잘못인가? 그리고 저 주방장도 손님들의 소원대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노래를 꼭 공연장에서만 해야 노래인가?"

 참 멋진 카루소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도 변합니다. 피부도 점점 노화돼 가고, 목소리도 변하고, 즐겨 먹는 음식의 취향도 변합니다. 또한 ‘내’가 가진 지위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변하는데도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지위와 명예에 함몰된 채로 살기 때문에 이미 변해 버린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오늘을 어제처럼 살아가는 건 아닐까요.

 카루소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듣고자 한다면, 어느 곳이든 선뜻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어빙 교수처럼 자신의 엄청난 지식이 그저 선배 학자들의 지식이라는 옷을 잠시 빌려 입었다는 겸손함이 진정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