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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순휘 정치학 박사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깊은 뜻은 호랑이에게 기습을 받아 물려가는 그 상황에도 정신을 차리고 살 생각을 한다면 반드시 살아 도망칠 순간이 생기니 그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설마’하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화돼 한밤중에 날벼락으로 떨어질 판이 되었으니 국가 안보가 호랑이에 물려갈 상황에 처했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정국을 보면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고 방구깨나 뀌는 정치인들이 수없이 공언했으나 ‘사드배치 문제’에 대한 안보의 위기를 생각하는 잣대는 당리당략뿐이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할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기에서 독립이 된 후 우리 민족은 그해 12월 27일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에 따른 ‘신탁통치(信託統治)’가 결정됐다. 당시 좌우익 없이 민족적인 단결력으로 반탁을 주장하는 대규모 시민대회를 개최하기로 했으나 며칠이 지난 1946년 1월 2일 남조선공산당을 대표하던 박헌영 일당이 옛 소련의 지령을 받고 찬탁(贊託)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렇게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북조선 공산당에게 정략적으로 이용당하면서 남한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분열이 남북 분단을 고착화하는 단초가 됐다. 당시 해방 후 국가사회의 기반을 세우고, 옛 소련군 세력과 김일성 일당의 반민족적 전쟁 준비와 공산사회주의 전술전략의 위기에 대항해 민족적 단결이 절실했던 시기에 우리 민족사회는 찬탁과 반탁 데모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무법천지의 혼란에 휩싸여 갈 길을 잃고 방황했던 아픈 역사를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당시 외신들은 우리 민족을 빗대어 "독립을 줘도 독립할 줄 모르는 민족이고, 신탁통치가 필요한 민족이다"라고 폄훼했다고 한다.

 신생 독립 대한민국의 국기(國基)를 세워야 할 시기에 남조선은 찬탁 반탁 데모세월에 사회의 역량을 소진했고, 북조선공산당의 김일성은 군사력 증강에 치밀한 역량을 쏟아 부으며 적화남침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사 최악의 비극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오늘날 ‘사드배치 문제’를 논쟁하는 우리 사회가 한국전쟁 전야와 같은 불안이 휩쓸고 있는데도 갑론을박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지만 해결책을 명쾌하게 제시하는 바가 없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첫째로 사드배치 문제는 ‘주한미군(U.S. Forces)의 자국군의 안전을 위한 방어무기 배치가 본질’인 아주 단순한 군사 업무의 하나인데 중국의 내정간섭적 과잉 반응에 우리가 휘둘리고 있다고 할 것이다. 사드배치의 시종이 북한 위협에 대한 방어라는 단순한 군사적 업무에 불과한 것이다. 중국이 강국이 공격용이 아닌 방어용을 배치하니 못하니 하는 것은 국가적 외교결례를 넘어선 오만이라는 것을 알고, 사드배치가 국가 의사로 결정이 된 이상 물러서서는 안된다. 둘째로 사드배치의 소모성 논란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안보는 결코 양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닌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고, 설마 하다가 북한에게 남침도 당해봤고, 이웃 나라 베트남이 공산 월맹군에게 파리평화협정에 끌려 다니다가 패망하는 것도 봤지 않은가? 심지어 러시아가 2014년 3월 방심하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기습적으로 점령해 합병시키는 무서운 사실(fact)를 체험하지 않았던가? 우크라이나의 정국 혼란이 푸틴의 야욕에 나라땅을 뺏기고도 바라만 보는 꼴이 됐던 것이다.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없었던 1950~60년대에 나라를 일으켜 세웠던 것은 ‘애국심’이었다. 맨주먹으로 공산화를 지켜낸 국민적 단결심으로 공산주의와 맞서 싸워 이겼던 것은 무기도 군대의 숫자도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지금 애국심이 실종된 시대라는 말도 공공연하다. 애국심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부디 사드배치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지 말고, 애국심으로 동북아의 섬나라처럼 외롭게 자유민주주의의 촛불을 밝혀가는 나라의 안보를 위해 지역사회의 이기주의와 배타주의를 내려놓기를 간절히 호소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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