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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합리적이다’라고 말할 때의 합리적이다의 의미는 감정의 개입을 자제하고 이성의 힘으로 내린 판단을 뜻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여기에는 공감 능력도 작용을 해서 역지사지 마음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관용도 들어 있으면 좋은데, 명쾌한데다가 때론 차갑기도 해서 허둥거리지 않은 판단이기에 그르치지 않은 판단일 것이란 선입견이 있다.

 합리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과 구성 구조에 필요한 법칙이다. 냉정한 법 조항마다 예외 항목들이 들어있는 것은 정상참작이란 공감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 되겠다. 원리원칙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숨통을 열어 덜 억울한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를 하는 부분이다.

 살아보니 합리도 공감도 양극이 있어서 어느 한 쪽만을 무조건 지지할 수가 없다. 각자의 판단이나 생각이 작용하는 만큼 대안도 방법도 천차만별인데 적정한 선이 어디인지 판단을 하려면 자세히 오래 보고 심사숙고해야 하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선하고 정의로운 것이 모두 합리적이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가 없구나, 요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예전에 중학생 시절에 느꼈던 혼란스러움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우리가 중학생이던 시절에는 작문 수업이 정규 교과 과정에 있었다. 흑단 같은 머리를 길게 길러서 땋은 머리를 한 여선생님이 작문 수업을 하셨는데 심오한 한마디를 던져서 십대 중반의 여학생들 영혼을 혼란스럽게 하곤 했다. "지나친 선도 악이다." 선생님의 말씀은 통념을 벗어난 교훈이라 어리둥절해지곤 했었다.

 불교 경전을 들추지 않더라도 중용을 중시하는 말씀들을 여러 번 들었다. 깊은 뜻 가진 그 깊이만큼 헤아려지지는 않지만 언저리쯤은 이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지나친 선도 지나친 악도 다 추앙 받을 마음이 아니므로 비켜가야 할 마음자리라는 말이 이해되는 세월을 살았다. 온갖 퇴적물 쌓아 온 세월의 시간 층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얼굴이 많이 상해보이는 그이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냐며 다들 걱정을 했다. 여러 사람들 궁금증에도 입을 다물고 대답이 없던 지인이 한숨을 내쉬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자그마치 그 애와 20년이다. 이게 뭔 꼴인가 싶네, 빠듯한 살림에 오갈 곳 없는 애를 재우고 입히고 가정교사 역할까지 해서 공부시켜 대학 보내고 취직 시켜주고 결혼 혼수품도 마련해 주었는데 이게 무슨 터무니며 허황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속상해 했다. 가정폭력으로 풍비박산 된 집 애가 지인을 잘 따르기도 했고 총명해서 눈치도 빠르고 일 눈썰미도 있어서 애도 봐주고 집안일도 거들면서 같이 살자고 했다. 우리도 아는 그 애는 지인의 집에서 학교도 다니고 대학까지 졸업을 했다.

 자세한 내막을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지만 성인이 된 아이의 명의를 빌려서 사 놓았던 부동산이 문제가 되었다. 명의자 권리를 행사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왔다 한다. 단순하지 않은 복선이 얽혀있는 것 같은데 더 자세한 설명도 원치 않았고 캐묻기도 난처해 모임 자리가 어색해졌다. 민감한 사안이라서 모두 침묵하고 있는데 누가 이 말을 꺼냈다. "선한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합리적인 선택에 정의가 필요한가? 라는 말에 각자 자기 의견을 내보였다.

 우리나라에서 분실되거나 도난당한 휴대전화의 90%가 중국으로 밀수되고 일종의 장물인 이 휴대전화를 사서 액정을 갈고 케이스를 교체해서 중국 시장에서 새 제품으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고 했다. 도난 장물인 중고폰이 새 상품으로 팔리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라고 하는데, 고가의 순수 신상품을 밀어내고 판매 점유율이 무척 높다고 한다. 양심불량의 상도덕이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적은 금액으로 고가의 휴대전화를 살 수 있으니 서민 소비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론이라고 한다더라며 누가 말을 꺼냈다.

 지인의 지금 사정과 중국 시장의 장물 휴대전화 판매 호황이 평행이론이 될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선하고 정의로움의 가치와 합리적 선택의 가치가 충돌하면 무조건 선하고 정의로움이 당연 최우선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주장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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