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행정학박사.jpg
▲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모두가 원하지만 생각만큼 그리 쉽게 구해지지 않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살펴보면 어렴풋이나마 행복의 열쇠를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임기를 마친 트루먼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면서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아니, 이렇게 짐이 많을 줄 알았으면, 대통령을 한 번 더 할 걸 그랬어."

백악관을 떠나는 대통령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들만이 내뱉을 수 있는 여유가 아닐까요. 자신의 짐을 아랫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손수 나르는 모습 또한 무척이나 귀해 보입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네덜란드의 철학자인 스피노자의 삶에서도 행복한 삶의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가 어느 대학의 총장으로 초빙을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자신이 진리를 위해 살 수 있도록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평소의 신념과 소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을 안경 렌즈를 연마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철학은 아직도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해리 포터」의 작가는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너무나도 가난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딸에게 동화책을 사줄 수 없게 되자, 아이에게 읽힐 책을 직접 쓰게 되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만약에 이 책이 팔리지 않으면 우리 딸이나 읽게 하면 되지!’라는 소박한 생각으로 글을 썼던 겁니다. 이것이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행복은 이렇게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해나갈 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닐까요. 이렇게 자신의 삶에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익숙하다는 점입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감사해하는 마음은 자기 자신이 무척이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겸허’함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겸허함과 감사함은 같은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는 당연한 일을 당연시하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도시락을 늘 가져가야 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이라 반찬은 늘 김치뿐이었어요. 친구들의 풍성한 반찬을 볼 때마다 가난한 부모님을 탓하곤 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시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도시락을 싸 주시는 것이 ‘엄마니까 당연히 그러는 것 아니야’란 생각으로 그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무척이나 힘드셨을 텐데, 그러나 단 한 번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되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두 모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칠면조 요리가 식탁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 칠면조 고기는 아무 맛도 없습니다. 닭과 칠면조 중에 어느 것이 맛있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모두가 닭고기가 맛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먹을까요?

200년 전으로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가야 그 이유를 헤아려볼 수가 있습니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은 자신들의 조상들은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보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곳곳에 덩치가 큰 칠면조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인디언들도 칠면조 고기가 맛이 없어서 먹질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그들은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동시에 이렇게 맛없는 칠면조 고기를 먹으며 나라를 세운 조상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이렇게 자기 분수에 맞는 생활을 즐겁게 해나갈 때,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