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jpg
▲ 신효성 소설가
축축 늘어지는 폭음 한가운데 연 3일을 집안을 뒤집어 대대적인 정리를 했다. 수년째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모셔둔 물건들을 치우고 나니 시선이 낮아지고 기가 순환할 공간이 생겨나 시원하다.

 서랍장, 수납장 구석에 하나 둘 쌓여있는 수건을 보이는 대로 꺼내 모아보니 무려 11장이 나온다. 결혼식, 돌잔치, 승진, 이런 저런 행사장에서 받아온 기념품 수건이다. 기념 수건은 목적에 맞는 이름표와 감사를 달고 제가 있어야 하는 세면장이 아닌 어두운 수납장 칸 안쪽에서 긴 휴면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박스 포장을 벗기고 수건에 찍혀있는 기념행사 내용을 읽었다. 6년이나 된 친정아버지 팔순도 있고 여름 해양 다문화 국토순례도 보이고 올해 중학생이 된 친척 아이의 돌잔치 수건도 나와서 깜짝 놀랐다.

 문득 이성복 시인의 ‘소멸에 대하여1’ 시 구절이 생각난다. 예전에 고인이 되신 시인의 장인과 아버지의 생전 사회 활동이 선명한 존재로 박혀있는 수건이 세면장 수건걸이에 걸려있는 것을 어느 날 보게 된다.

 

 "수건! 그거 맨 정신으로는 무시 못 할 것이더라

 어느 날 아침 변기에 앉아 바라보면, 억지로

 찢어발기거나 태워 버리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을

 낡은 수건 하나가 제 태어난 날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나 저제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 수건은 낡아도 잘 버리지를 못한다. 10년 지난 수건도 여전히 잘 개서 오래 빨아 입은 내의처럼 속이 비쳐도 또 사용한다. 수건보다 수십 배 더 주고 산 옷들은 버리면서 수건은 낡아도 세면대 수건걸이에 또 걸어둔다. 무릎 끓고 앉아서 걸레질하는 청소는 예전에 그만둔 터라 낡은 수건의 용도가 진화할 길이 막혀서인지 초지일관 수건은 수건으로 쓰임을 받는다.

 시인은 장인과 아버지의 죽음이 생에서의 소멸이라 그 분들의 활동기에 들고 온 수건도 태우든지 찢어버리든지 소멸로 가야하는데 여전히 기념행사가 선명해 마음에 남는다고 한다. 어느 날 변기에 앉아서 무심히 바라보는 눈에 수건걸이대에 걸려있는 장인과 아버지의 사회활동이 눈에 들어와 수건은 들고 온 사람은 소멸해도 수건은 여전히 활동 중임을 알았다.

 세탁기 안에서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 얼룩과 때를 사하고 정갈하게 말려서 다소곳이 활동 중인 수건에게 경의를 표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거창한 역할을 하시는 큰사람이라고 스스로 단위에 올라서서 군중을 내려다보며 레밍이라 하대하는 거룩한 분보다 어쩌면 수건의 살신성인이 훨씬 위대하다.

 레밍으로 희화된 국민은 이 혹서기의 더위에 참선으로 마음을 달래고 더위도 달래고 흘린 땀 씻은 샤워 후에 자기 몸 적셔 친히 물기 말려주는 수건을 영생으로 받들고 싶다.

 변기에 앉아서 무심히 바라본 수건걸이대의 수건이 소멸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수건에서 너무 나갔나 싶기도 하지만 자신의 몸을 적셔서 물기와 오염을 받아내어 사람을 이롭게 돕는 수건은 소멸하는 듯 살신성인하기에 ‘수건은 맨 정신으로 무시 못 할 것이더라’는 말을 새겨 본다.

 국민을 레밍이라고 칭하는 단상 위 높은 분들이 ‘이제나 저제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시구에 정치 생명을 생각해 보고 바른 정치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수건이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긴장이 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