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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훈 경기본사 경제문화부장
떠나기 전 항상 설렘을 안긴다. 유럽 왕복 60만 원대의 항공료, 가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출장을 통해 한 번 경험한 나라. 아쉬움이 남아 있다. 그래서 결심했다. 또 스페인이다. 이번에는 딱 세 가지를 목표로 했다. 라리가 축구 경기 직관(직접 관람), 가보지 않았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전 투어, 그리고 쇼핑이다. 국내에서도 잘 하지 않는 쇼핑을 굳이 하는 이유는 스페인 현지 브랜드가 워낙 한국보다 싸고 종류도 많기 때문이다.

 먼저 라리가 축구 일정을 살폈다. 국내 포털사이트를 통해 확인했다. 어차피 레알마드리드 아니면 FC바르셀로나다. 마드리드 일정이 맞았다. 그렇다고 마드리드 ‘인 아웃’을 하기에는 좀 아까웠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인’ 마드리드 ‘아웃’으로 정했다. 마드리드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어! 순간 당황했다. 밤 12시 가까이 도착 후 다음 다음날로 봤는데, 바로 다음 날이다. 한국 시간과 스페인 시간을 구분치 않았던 탓이다. 이대로는 바르셀로나 도착 후 눈을 뜨자마자 마드리드로 이동해야 한다. 요즘 유행어로 ‘스튜핏’이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다시 찾아 보니 바르셀로나 경기가 원래 생각했던 다음 다음날 경기다. 그런데 홈 경기가 아니고 원정이다. 발렌시아CF와의 경기라 발렌시아로 이동해야 한다. 애초 그렸던 일정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어렵게 어렵게 발렌시아 홈페이지로 들어가 티켓을 끊었다. 한화 약 16만 원. 예상은 했지만 비쌌다. 어쨌든 세 가지 목표 중 하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기쁨이 찾아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알함브라궁전 투어를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시작해야 한다. 즉, 전날 밤 10시 30분 축구 경기가 끝나면 자정 야간버스를 타고 여덟 시간이 지나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투어에 참가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돌아 오기 하루 이틀 전에 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중간 일정이 붕 떠버린다. 떠나기 전이다. 이 정도 무리수는 감당할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때론 욕심이 생기는 법이다.

 #돌아다니고 있는 중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다. 항상 준비가 덜 돼 있다. 그게 배낭여행의 묘미라 믿고 있지만 막상 와서는 신경 쓸 것이 이만저만 아니다. 어떤 날은 와이파이를 찾아 하루 몇 시간씩 검색을 하고 있다. 다음 날 어디로 어떻게 이동할 지, 숙소는 어디를 잡을 지, 뭘 해야 할지 등등. 한국에서 미리 계획을 잡아도 됐지만 그렇게 되면 패키지 여행과 다른 게 뭘까라는 반문에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초반 하루 이틀 정도는 동선을 잡아 놓지만 전일정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목표로 정한 셋 중 두 가지를 해냈다. 라리가 축구 직관은 뜻하지 않은 화두를 던졌지만 어쨌든 메시의 플레이를 눈으로 봤고, 버스 안에서 쪽잠으로 버틴 후 맞은 알함브라는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미지 이상의 감동을 전했다. 모처럼 가이드의 설명에 집중도 잘됐다. 하루하루 뿌듯하다. 힘들지만 이조차 행복으로 느낀다. 여기서 잠깐 딴 생각이 든다. 그럼 과연 한국에서는 그런 적이 있던가. 갑자기 암울해졌다. 아직 여행이 끝난 것이 아니다. 그만 고민하자.

 #다녀 와서

 인천공항 출국장과 입국장을 발로 디딜 때의 감성은 극과 극이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이 때문에 한때 ‘차라리 여행을 가지 말까’라고 진지한 반성도 해봤지만 이는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과 같은 어리석음을 깨달은 후 버린 문제다. 순간만 툭툭 털어버리면 될 일. 어차피 출국장이 있기에 입국장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 와서 미처 생각 못했던 골칫덩이가 생겼다. 쇼핑을 너무 해 버렸다. 고가의 물건은 없지만 가짓수가…. ‘맛본 놈이 맛을 안다고’, 서툴렀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쇼핑을)안 하면 어차피 제로 게임이다. 그런데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자꾸 득실을 따진다. 그러면 계속 하게 되더라"이다. 어디 쇼핑만 그러할까. 그래도 목표는 이뤘지 않은가. 그러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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