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사토리 세대를 넘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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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사토리 세대를 넘을 수 있도록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 기호일보
  • 승인 2018.02.06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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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올해 22살의 청년이 테니스 대회에서 보여준 기량과 매너와 진심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1등이나 승리만을 목표로 아등바등 달려온 삶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는 너무나 생경했고, 마치 유전자가 완전히 달라진 듯한 새로운 세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단연 주목받는 이슈 가운데 청년세대가 있다.

그 대표적 개념으로 ‘밀레니얼 세대’와 ‘사토리 세대’가 운위된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연령대로 이들의 특징은 정보통신기술에 익숙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소통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후반 사이에 출생한 연령대로 이들의 특징은 안정된 직장은 물론 개인적 출세에도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본어로 ‘깨달음’을 의미하는 사토리란 말이 보여주듯이 이들은 물질적 욕망에서 자유로운 세대다.

 우리 한국의 20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보다는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에 가깝다. 사토리 세대처럼 물질적 욕망에서 자유롭기에는 우리 20대의 삶은 너무나 절박하다. 10대의 치열한 입시 경쟁과 20대의 무한정 취업 경쟁을 겪으며 연애·결혼·출산·꿈·희망을 포기했다는 ‘헬조선·수저계급’ 등의 조어가 바로 옥죄이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밀레니얼 세대에 가깝다고 하는 것도 일부분이다. 디지털 문화에 친화적이고 개인주의가 강하다.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중시하고 자기 방식의 삶에 보다 비중을 둔다는 점에서 그럴 뿐이지 ‘희망’이는 두 글자가 없는 사회를 살아간다는 집합의식 면에서는 큰 차이가 나타난다.

 흔히 한국의 청년세대가 지닌 한계로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중시’하는 기성세대의 오랜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원인과 이유를 밝히면 곤란해지는 기성세대와 다르겠으나 이들 역시 잠시 잠깐에 대한 비판, 결과에 대한 분노, 일시적 충분 상태를 경험했음에도 원인을 밝히고 이유를 대는 면에서는 이상하게도 관심을 끊고 있는 듯이 보인다.

 세계 4대 테니스대회의 하나로 꼽히는 호주오픈에서 4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 정현 선수의 참모습은 이런 면에서 우리의 20대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만만치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승부에 앞서 최선을 다하고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 패자에게도 존중하는 마음을 보내는 모습, 당당하게 여유를 보이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여러 곳에서 탄식을 불러 일으킨다.

 놀 시간이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하면서 입시 제도를 바꾸지 않는 기성세대, 공해 시설이 들어와 건강을 위협하는데도 부실한 공장을 가동해야 먹고 산다는 기성세대, 백혈병에 걸러 가며 경제 살리는 데 진력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할 일이 아닌 걸 ‘나 좋다’고 그대로 끌고가려는 이 어두운 관행(?)에서 그나마 한 줄기 햇살을 본 신음소리라면 과언일까?

 소설 삼국연의에서 3대 전쟁이라고 하는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을 꼽는다. 이 싸움의 특징은 단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젊은 신흥세력이 구세력을 물리친 것이 하나고, 절대적으로 병력 수효가 열세인 쪽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끈질기게 맞서 대승을 거뒀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4∼5배 이상의 기득권 세력을 젊음의 기량, 포부, 굽힐 줄 모르는 투지로 제압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 세상은 눈부시게 변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식이기도 한 청년세대의 성장을 지원함으로써 우리의 책임을 가볍게 할 수 있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그들이 희망을 갖게끔 도와줘야 한다. 청년세대의 주체화와 역량 강화를 돕는 것이 가장 절실한 까닭이다.

 정현이 던진 잔잔한 파문에서 우리 세대가 가진 권력과 영광이 행운의 결과이지 도덕적으로 마땅히 누려도 좋은 응분의 대가가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는 해방 이후 산업화, 민주화의 성취가 22살의 청년에게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과 여유의 배경이 되었음은 분명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청년세대들 모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사회가 이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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