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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황혼이 물든 호숫가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한 여인이 바위 위에서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있고, 수면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에서는 늙은 어부가 한가로이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어부는 ‘풍덩!’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뒤돌아보니 조금 전의 그 여인이 보이질 않습니다. 호수에 빠진 여인을 간신히 건져 올린 노인은 의식을 되찾은 여인에게서 사연을 들었습니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에게 버림받고, 하나뿐인 아이도 얼마 전에 병으로 죽었어요. 이제 의지할 곳도 없고 함께 할 사람도 없는데 제가 살아 뭐하겠습니까?"

 늙은 어부는 "2년 전에 당신 삶은 어땠소?"라고 묻자, 여인은 "그땐 정말 행복했습니다. 자유롭고 아무런 걱정도 없었으니까요"라고 답했습니다.

 "아주머니, 그때도 남편과 아이가 있었소?"

 "물론 그때는 없었지요. 혼자였습니다."

 그러자 어부는 이렇게 여인에게 충고해줍니다.

 "지금도 남편과 아이가 없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소. 당신은 그저 운명의 배를 타고 2년 전으로 돌아온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여전히 당신은 자유롭고 아무 걱정도 없는 거예요. 기억하세요,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요."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라는 책에 소개된 이 사례를 접하면서, 위대함과 평범함의 차이는 ‘하루를 대하는 자세’라는 글귀가 떠오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보다는 한 달이나 일 년, 또는 일생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소홀히 보낸다고 하고, 위대한 사람들은 주어진 하루하루를 언제나 특별한 날이나 최고의 날로 여긴다는 겁니다. 하루하루를 특별하게 여긴다고 해서 분주하게만 산다는 뜻이 아니라 감동과 감사함으로 채워진 하루하루를 의미하겠지요.

 사실 ‘현재’라는 말에는 과거와 미래 모두가 포함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현재를 그렇게 살다 보면 그것들이 아름다운 과거로 채색될 것이고, 또한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어낼 테니까요.

 「신과의 인터뷰」라는 책에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신의 대답이 나와 있습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모은 돈 모두를 잃어버리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도 놓쳐버리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저의 일상도 신의 꾸짖음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감동과 감사함으로 살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 원망과 증오심으로 살곤 했었으니까요.

 육십 넘은 친구들을 만나면 대화의 주제가 과거와 많이 달라져 있더군요. 이십대에는 연애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30~40대에는 성공에 대한 주제가 주를 이뤘지만, 직장에서 은퇴한 지금의 그들은 지극히 사소한 일상들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손자손녀 자랑에서부터 텃밭 가꾸는 기쁨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가 끝을 모르고 이어집니다.

 이것이 나이를 먹은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리 드 엔젤의 「살맛나는 나이」란 글에도 똑같은 글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 순간 아직도 살아서 오고가고, 맞이하고 맞이되고, 갈망하고 갈망되고, 주변의 모든 것을 느끼고 음미하고 관조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누구나 커다란 곤경에 빠져보았고, 누구나 헤어나기 힘든 고통 속에서 허우적댔던 기억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아픔들로 인해 오늘의 우리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 벗이 있다는 것, 가족이 있다는 것,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감동이고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이 기적입니다. 지인의 집 거실에 걸린 글귀가 눈에 선합니다. "청소는 내일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다 자란 후에야 비로소 슬픔으로 배웠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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