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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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질
신효성 국제펜클럽인천지부부회장/소설가
  • 기호일보
  • 승인 2019.03.13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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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인천지부부회장
"나이는 많은 것을 훔쳐가는 도둑이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문득 이 문구가 떠올랐다. 의인화된 도둑이 훔쳐가는 것에 생명까지도 포함이라 노쇠해지면 생의 전부를 잃는 것이 순리이다. 혹시 치매인가 싶은 건망증이 늘어가고 호기심이 없어지니 세상이 시큰둥하고 무릎관절이 아파 움직이고 걷는 일이 성가셔지니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혼자 시간은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환절기 탓인지 부고 소식도 많아 죽음에 관한 생각이 진지해진다. 입춘은 한참 더 전이었고 경칩을 지났으면 곧장 춘분인데 여태 두꺼운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 신체활력 지수가 바닥을 찍을 판이라 봄의 절정까지 내의를 챙겨 입고 있을 것 같다. 미세먼지로 뿌연 대기가 좀 맑아진 날, 가로수 가지마다 연한 연둣빛이 아른거려 봄이구나 했는데 내 옷차림은 아직 지리한 겨울이다.

 나이 먹음은 쇠락으로 진입이라 후미를 따라가는 일이 자연의 순리라 해도 머뭇머뭇 뒤처지는 일이 많아질 것이기에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이제 미덥지 않다. 누군가는 소멸에 가까워질수록 정신은 맑아진다고 했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세상의 입들은 분주하게 증거하고, 위로보다 인증이 깔끔한 쿨한 노년을 살아라 세상의 뜻에 선택 당한다. 안락사가 법적으로 용인된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자살을 한 한국인이 2명이나 있었다는 기사를 봤다. 게다가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해 대기 중이라 한다. 불치병 환자나 식물인간에게 생명유지장치가 생명권 보장인지는 쉽게 속단하기 어렵다. 삶의 결정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미리 작성해두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고 현실적으로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라 지인들과 갑론을박 진지했던 적이 있다.

 젊음이 아닌 노년이 가까운 나이 쪽을 살다 보니 연명의료 결정제도에 관심이 간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시행을 하고 있다 한다. 작년에 시행한 제도인데 3월 기준 벌써 13만 명을 넘었다 한다. 웰 다잉(well-dying)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아 존엄한 죽음을 바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연사가 존엄의 완성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우리나라는 노인 자살률이 높다. 인구 10만 명당 OECD 평균 노인 자살률이 18.4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배에 육박하는 47.7명으로 불명예 자리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노년의 빈곤이 가장 큰 원인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빈곤율 통계를 보면 OECD 평균 12.1%보다 4배나 높은 48.4%라고 한다. 노인 인구 2명 중 1명은 빈곤층이다. 생의 선택권조차도 경제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연명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노령층은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노인이고 만성질환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궁핍하게 사는 빈곤 노인층은 극한의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어 자살로 생을 놓는 일이 발생한다. 자살 노인은 기초생활수급자 가구가 대다수라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고독사 역시 절대 다수가 극빈 노인층이라는 통계는 웰 다잉이란 말이 무색해져 예우 받지 못한 빈곤 노인의 죽음은 숭고한 생의 마무리와는 거리가 먼 사치가 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오는 글 중에 의사조력 죽음이나 연명 치료 중단에 관한 요청이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문제이며 존엄한 죽음 선택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해석도 공감이 된다.

 우리 사회의 의식 변화에 물꼬 역할을 할 연명치료 중단 조건을 완화하는 협의가 시작돼 존엄사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죽음의 선택은 윤리적 종교적 사회적 법률적 상황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국민적 공론이 있어야 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 의견도 충분히 수렴해서 만에 하나라도 가볍거나 억울하게 다뤄지는 죽음은 없는지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죽음은 어떤 연령대에서도 피할 수 없지만 노년의 죽음이 일반적이다 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이 생에서의 삶이 누추했든 풍족했든 생의 마지막은 존엄해야 하며 숭고한 마무리에 가치를 부여할 의무를 우리 모두 지고 있다. 생성으로 분주해질 봄맞이를 하면서 그 반대편 죽음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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