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그 슬픔과 그리움의 시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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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그 슬픔과 그리움의 시간 앞에서
문계봉 시인
  • 기호일보
  • 승인 2019.05.24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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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계봉 시인

1.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은 소리 없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늦봄의 꽃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미처 다 뽐내보기도 전에 도둑처럼 그렇게 불쑥 찾아와 당당한 표정으로 내 앞에 있습니다. 며칠 전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빗물의 집요한 닦달을 이겨낸 최후의 꽃들마저 이튿날 부는 바람에 한 잎 두 잎 속무무책으로 떨어져갔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꽃들을 안쓰러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꽃들은 이미 봄 햇살 속에서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물러나는 것이기에, 그리고 지척에 다가와 미소 짓는 계절, 여름에게 선선히 자리를 내주고 떠나는 것이기에 그 모습이 대견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계절이 저물고 나면 새로운 계절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자연의 순리겠지요. 인간의 삶 또한 그 순리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생명 있는 존재들은 모두 한 곳에, 그리고 같은 모습으로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것, 그걸 우리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지나간 세월, 변해가는 모습들은 모두 추억으로 마음속에 저장할 수 있기에, 그리고 언제든 연연히 그리워할 수 있는 붉은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하수상한 세월과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견디고 또 그것들과 태연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 여름이 시작되면서 자주 부고를 접합니다. 어제도 지인이 모친상을 당해 빈소를 찾았습니다. 망자(亡者)의 춘추 85세, 결코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셨고 게다가 꼬박 4년을 지병으로 병상에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상주와 조문객들은 ‘호상(好喪)’을 반기는 듯 표정들이 어둡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호상’이란,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사(喪事)’를 의미할진대, 병상에서 까무룩 하는 의식을 추스르며 4년을 누워있다 쓸쓸하게 돌아가신 고인의 죽음이 어찌 호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설혹 충분한 복록(福祿)을 누리고 죽음을 맞았다 하더라도 평생을 어미 새처럼 자식들을 보살피고 자신의 마지막 피톨까지 모두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 부모였다면 어찌 호상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지요. 실재로 지인의 가족은 4녀 1남인데, 그 중 48세인 막내 동생은 복중(腹中)에 있을 때 부친이 돌아가셔서 그 남은 5남매를 홀로 된 모친이 모두 키워냈다고 합니다.

 따라서 망자(亡者)에 대해 호상을 운운하는 것은 산 사람들이 그간에 느낀 불편과 마음의 황망함과 목전에 놓인 까다로운 절차에 대한 의례적인 위로이자 자기 합리화일 뿐 결코 고인의 영정을 옆에 두고 시끌벅적하게 술잔을 나누거나 화투 패를 섞으며 생각 없이 던질 말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세상에 ‘좋은 (친족의) 죽음’이 어디 있단 말인지요. 친족, 그 중에서도 부모나 자식의 죽음에는 호상이란 없습니다. 모든 친족의 죽음은 비감하고, 쓸쓸하고, 안타깝고, 아쉬운 것입니다.

 3. 지금은 여름의 초입입니다. 여름은 내게도 그리움의 계절입니다. 내 형이 죽은 것도 여름이었고, 내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도 여름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내가 철없던 시절에 바보처럼 내 곁을 떠났고, 또 한 사람은 내가 철들기 시작할 때쯤 초연하게 내 곁을 떠났습니다. 형은 어린 시절 뛰놀던 유년의 민둥산에서, 형과 내가 가지고 놀던 작은 구슬 속 무지개들처럼 화사한 모습으로 여전히 뛰놀고 있을까요? 혹시 그곳에서도 이곳의 나처럼 세월 속에서 모습이 변해가고 있지나 않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후에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형과 나는 서로의 변한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나는 늘 그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꽃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지금도 사계절 내내 꽃들은 아버지의 묘석 좌우에서 환합니다. 길을 걸을 때면 물처럼 흐르고 들판에 서 있으면 그냥 한 점 들꽃의 모습으로 풍경 속에 동화되곤 하던 분이셨지요. 그분은 분명 자신이 좋아하던 꽃들을 키우며 하늘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이곳에 남은 사람들의 가슴엔 여전히 서운함과 미안함이 공존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여름이 돌아오면 늘 아버지와 형이 생각납니다. 물론 보고 싶긴 하지만 많이 슬프지는 않습니다. 슬픔을 희석시켜 그리움이나 아련한 추억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세월이 흘렀으니까요. 본래 세월은 힘이 세잖아요.

 4. 그리고 다시 또 이곳은 여름입니다. 여름을 힘겹게 견뎌내야만 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디 사나운 정치와 모진 세파에 마음을 다치지 않고 무탈하게 이 여름을 통과해 조금은 단단해져서 조금은 센티해진 마음으로 맑은 가을 앞에 서게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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