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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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엘레지
김락기 시조시인/객원논설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19.06.12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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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시인
평소 가까이하던 강물이며 다리같이 느껴진다. 부다페스트 두나(다뉴브)강 마르기트 다리, 지난주 그 위에서 수백 명의 헝가리 사람들이 아리랑을 합창했다. 싯누런 물살 위로 그들이 던진 추모의 꽃송이들이 일제히 꽃비가 돼 쏟아졌다.

 지난 5월 29일 밤,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침몰사건. 멀리 동유럽의 내륙 국가 헝가리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나다니 애색하다. 다리 곳곳에 추모의 촛불, 꽃, 쪽지가 쌓이고, 부다페스트 시청에서는 검은 조기를 게양했다. 특히 흰 한복을 입고 애도하는 헝가리 여인의 모습에서는 새삼 우리의 전통상례(喪禮)를 회상케 했다. 멀고 낯설었던 그들이 이웃처럼 살갑게 다가왔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인근 강가에는 2차 대전 때 희생된 두나강 고혼들이 벗어놓은 신발 조형물들이 놓여 있다. 뼈저린 슬픔이 함께한다. 세상사 어디에나 희비가 없으랴만, 눈물로 흐르는 두나강 물발은 바로 이 나라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한강 물속으로 같이 섞여든다.

 헝가리는 남한보다 조금 작은 국토에 약 1천만 명의 인구와 유럽 최고의 아름다운 야경도시 부다페스트를 품은 나라다.

 시인 김춘수가 소녀의 죽음을 추모한 그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마차시교회 등 역사적인 건축물을 많이 보유해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 헝가리인은 아주 오래전 중앙아시아에서 서진해 정착한 민족으로 동양인의 피가 흐른다고 한다. 마늘과 파프리카를 넣은 얼큰한 음식을 즐기며, 헝가리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은 교착어란다. 갖은 외침 속에서도 독립을 쟁취하고 연면히 살아남아, 음악·연극·자수·조각 같은 전통 문화예술이 빛나는 나라… 더욱이 자발적인 아리랑 추모 행사에서 보듯이 ‘정한(情恨)’이 많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 같다. 우리 겨레와 감성이 상통하는 민족이라면 억측일까.

 아리랑은 곧 한민족이라 할 만큼 속속들이 우리 겨레의 정한이 스며있는 한국정신문화의 상징이다. 국가무형문화재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노래만 해도 60여 종에 3천 600여 수의 가사가 있다고 하나 아마 그 이상일 것이다. 전통 민요는 물론 나운규의 영화, 조정래의 소설, 뮤지컬, 교향악, 대중가요 등등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활용되지 않는 게 없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과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축하곡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도 진화하고 있기에 특정 보존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새로 지어 나타낼 수 있다.

 이뿐이랴. 앞의 헝가리인 합창에서 보듯이 이제는 세계인의 노래가 됐다. 나는 그전 이 칼럼에서 ‘시조’를 이야기할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가장 한국적인 아리랑은 이미 세계화의 반열에 올라섰다. 바야흐로 이 순간에도 그 누군가가 아리랑을 콘텐츠로 하여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있을 것이다(통시성). 남녀노소 세계인 누구든지 쉬이 접하면서도 각종 예술 장르로 변용할 수도 있다(보편성). 사라질 듯 다시 살아나 이어지는 저항력, 그 끈질긴 여운의 빛살이 내리 비치고 있다(생명성). 일상 속에서 잊고 살아가다가도 아리랑 가락이 울려오면 저도 몰래 끌리어 마냥 울거나 웃게 된다(정체성).

 아리랑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담을 수 있다. 여기서는 ‘애(哀)’로서의 아리랑을 본다. 아리랑의 어원으로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엘레지(Elegy)는 애가, 비가, 만가, 연가 따위로 풀 수 있다. 헝가리 사람들이 부르는 아리랑 엘레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그 합창소리 애잔하다. 동영상을 통해 보면 볼수록 가슴을 저민다. 따라 부르는 나도 몰래 울먹여진다. 가사는 못내 불의에 떠난 님에 대한 슬픔에 머물지 않는다. 역설이 들어 있다. 이승에 남은 자는 어쨌든 살아야 한다는 강인한 생명력과 가신 님에 대한 그립고 아쉬운 추모정신이 그득하다. 때와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전승·창작·개사되면서 당대의 정서를 반영해온 아리랑. ‘슬픔’의 아리랑은 저 머나먼 이국땅 두나강 유람선 침몰 희생자의 추도곡이 돼 온 세상에 울려퍼졌다.

 담장에는 질긴 목숨 인동초꽃이 금은빛으로 지고 있다. 먼산 접동새 우는 늦저녁, 도회지 텃밭골의 개구리 울음소리는 만가가 되어 흐른다. 헝가리인들의 정과 한을 섞어 애도 시조 한 수 바친다.

 # 두나강 연가
 

 아름답다 다 못하여
 더 구슬픈 밤경치여
 
 두나강물 천길만길
 넋이라도 부여안고
 
 아리랑
 그 고개 넘어
 빛 누리에 꽃 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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