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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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좋다
신효성 국제PEN한국본부 인천지역부회장
  • 기호일보
  • 승인 2019.09.05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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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PEN한국본부 인천지역부회장
눈을 마주보고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해 본 적이 있나? 근래에는 기억이 없다. 상대방과 눈을 맞춰 보는 3분은커녕 30초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유아기 아기를 키우는 엄마로 돌아가 보면 아기와 눈을 맞추는 엄마가 보인다. 옹알이에 미소에 웃음소리에 엄마는 아기의 눈빛과 한정 없는 사랑을 나눈다. 세월에 고목의 껍질처럼 굳어진 감성은 눈을 맞추며 마음을 전하는 일이 생겨나지 않았다. 무한한 관심과 배려가 사랑 속에 녹아든 시절이 다시 올까 싶어서 눈맞춤을 시도해 본다. 기분 좋은 파동을 기대해 보지만 서로 어색해 머쓱해진다. 한 이불 덮는 배우자도 커 버린 아이들도 엄마의 돌발 눈맞춤에 오버액션이라며 경고를 준다.

 우연히 중증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눈을 맞추는 장성한 손자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는 구십 연세 치매 노인이셨다. 누구신가? 할머니는 애지중지 키웠던 손자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다.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와 손자가 마주보고 눈을 맞췄다. 말을 닫고 눈으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다. 손자는 넘치는 사랑으로 돌봐주셨던 할머니가 이생을 마무리할 때 할머니께 가득한 사랑을 보내는 손자의 눈빛을 간직하기를 소망했다.

 할머니 가슴에 평온과 사랑을 가득 채워드리고 싶다는 손자의 간절함이 할머니께 전달됐는지 중증 치매 할머니는 오래 손자와 눈을 맞췄다. 손자의 눈빛에 할머니를 향한 사랑과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마주 보고 있던 할머니 눈빛이 편안해지면서 손자를 눈으로 어루만졌다. 손자의 눈빛에서 할머니와의 이별이 다가옴을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보였다. 한참을 마주보고 있던 할머니 입에서 나온 말씀 한마디, "눈이 좋다." 그리고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자의 얼굴에 안도가 보였다. 할머니는 손자에 대한 기억은 잃었어도 따뜻함이 스민 사랑 가득함을 느끼신 것 같다.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내 눈시울도 젖어들었다.

 치매 환자는 기억은 사라지지만 감정은 남아 있다고 한다. 행복하고 따뜻한 감정의 기억은 저장돼 치매 환자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한다. 손자의 사랑 담긴 눈빛을 받은 할머니는 고운 감정의 꽃밭을 거닐며 남은 생을 보낼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훈훈했다. 나에게도 치매를 앓으셨던 할머니가 계셨다. 삼십 년도 더 지난 옛날이야기다. 할머니는 치매가 진행되면서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셨다. 지금처럼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이 없었던 시절이라 할머니를 돌봐드리는 일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었다. 할머니 식사를 챙겨드리면 할머니는 눈을 맞추며 웃으셨다. 얼굴 가득 번진 미소가 편안해 보여 떠먹여 드리는 일이 수고스럽지 않았다. 할머니를 추억하면 애기처럼 밥을 받아 드시던 다정했던 눈빛이 떠오른다.

 가까운 친척 중에 고약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돌보는 사람의 감정을 격하게 만드는 치매 노인이 계셨다. 아주머니는 시어머니의 괴팍한 치매에 지쳐 있었고 분노로 이글거리는 시어머니의 눈빛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술주정뱅이 남편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며 살았던 세월이 치매가 오면서 가둬 두었던 분노가 터져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고달팠던 삶을 이해는 하지만 차라리 돌아가시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나을 것 같다는 말도 여러 번 했다. 반찬을 챙겨 먹지 못해 국에 말은 밥을 들고 가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거슬려 문을 닫고 나온다고 했다. 그릇 엎어지는 소리에 욕설에 머리채 휘어잡는 손아귀를 벗어나려 몸싸움을 하다 보면 난장판이 되기 일쑤라고 했다.

 그래도 막상 돌아가시고 나자 시누이보다도 더 서럽게 울었던 아주머니다. 싫든 좋든 치매 시어머니와 눈을 맞춘 시간이 모시고 산 아주머니가 가장 많아서일 것이란 말이 아주머니에게 위로가 됐다 했다. 가끔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말보다 농밀한 위로를 나누고 싶다. 중증 치매인 할머니는 한참을 정말 한참을 손자와 눈을 맞추며 안온하게 앉아 계셨다. 할머니의 한마디 말씀 ‘눈이 좋다’가 준 감동이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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