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Tonsure)은 ‘큰 가위’라는 뜻의 라틴어 ‘Tonsur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세에는 삭발이 성직자와 세속인을 구별하는 기준이었고, 사제가 세속적인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종교에서는 보다 헌신적인 종교적 삶을 시작하는 의식으로서 머리카락을 밀어버린다. 지금도 승려로 입문하는 의식을 치를 때 삭발을 한다. 이후 자격을 제대로 갖춘 승려가 될 때 다시 삭발식을 거행한다. 

 기자는 유년시절 상당 기간을 이런저런 이유로 ‘까까머리’ 스타일을 ‘고수’한 터여서 삭발에 대한 특별한 감흥이 없다. 구닥다리인데다 기름칠마저 제대로 되지 않아 뻑뻑한 수동 바리캉이 한 달에 한 번꼴로 머리 위를 종횡무진 누비며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고통을 떠올리면 삭발은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지난 1990년에는 군 입대를 앞두고 통과의례인 삭발을 했고, 2017년 뜬금없이 기계 성능이 궁금해져 시험 삼아 머리카락을 밀어버린 적이 있다.

 최근 정치권-정확히 말하자면-야권 중심으로 이른바 ‘삭발 릴레이’가 진행 중이다. 엄밀히 따지면 ‘스킨헤드’라는 의미의 삭발이라기보다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이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여하튼 지난 10일 무소속 이언주 국회의원이 삭발을 한데 이어, 11일에는 자유한국당 박인숙 국회의원과 김숙향 동작갑 당협위원장이 삭발에 동참했다. 16일에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7일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삭발 릴레이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삭발의 의미를 조국 법무부장관 파면과 문재인 정권 퇴진을 내걸었다. 이른바 ‘조국 정국’의 불씨를 지속적으로 살려보자는 의도로 읽힌다.

 대개 정치인들의 삭발은 강한 메시지를 담기 일쑤다. 하지만 이번에는 희화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오죽하면’이라며 의미를 부여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쇼’라거나 ‘시대착오적’이라며 비아냥댄다. 분명한 건 모든 삭발이 세상에 똑같은 의미를 던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삭발이라고 다 같은 삭발이 아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