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산 인천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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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한 친구는 어릴 적 친구로 그야말로 불알친구인 죽마고우가 있고 또 한 친구는 열아홉 살 때 만나서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사이다. 어릴 적 친구는 나이 들어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누이를 따라 충북 제천으로 갔고  나는 나중에 만난 친구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우리는 친형제처럼 늘 함께 붙어 지냈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이 위였다. 고향이 충남 당진으로 논농사를 많이 짓는 집 서자라고 했다. 나이가 들고 나서 어머니를 모시고 인천으로 와서 지내고 있었다. 그 계기로 나도 친구 따라 시골집을 두어 번 찾아간 적이 있는데 시골집치고는 꽤 넓고 컸다. 동네에서는 천석꾼으로 불릴 만큼 제법 부농이란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을 다녀온 이 친구가 웬 여자 사진을 들고 와서 내밀며 선을 본 여자인데 나한테 어떠냐고 물었다. 사진을 보고 나서 친구의 얼굴을 살피니 이 친구 좋아서 입이 싱글벙글이다. 

나는 정색을 하고 "자네가 이 여자하고 결혼하면 우리의 우정이 끝날 것 같다"라고 했다. 그러자 이 친구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 여자는 고집이 세서 자네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울 거야, 남자에게 지고는 못 살 여자거든!" 그 당시 나는 명리학을 배우던 중이었다. "그럼 내가 이 여자한테 지고 산단 말이야? 야! 너 날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릴 하니? 그런 걱정이면 한주먹으로 끝낸다. 히히히 너는 걱정하지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친구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팔에 힘을 준다. "결혼이란 평생을 함께 살아갈 배필을 정하는 일이야 잘 생각해서 결정해 내 말이 사실일 수 있어!"

이 여자는 시골 학교 동창의 누이동생이라고 했다. 결혼한 지 6, 7년이 지나서부터 내가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고 싸움을 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살림살이가 남아나질 못했다. 이 친구 그때서야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는지 이 여자하고는 더 살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소연을 한다. 결국, 결혼 10년 만에 별거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 친구 혼자 몸으로 인천 서해에 있는 승봉도라는 섬에 들어가서 뱃사람이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배를 직접 운영하기로 했다면서 수협에 사업자금을 신청했는데 보증을 좀 서달라는 것이다. 

친구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어서 함께 수협에 갔다. 그는 대출을 받아 고기잡이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동안 연락 없이 지내던 부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이 친구가 있는 섬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함께 고기잡이하면서 잘 지내는가 싶었다. 그런데 또다시 불행이 이들을 덮쳐오고 있었다. 부인하고 배에서 고기잡이하던 중에 그물을 올리는 기계에 부인의 팔이 걸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고기잡이를 뒤로하고 인천 병원으로 후송해서 3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그동안 조금 모아놨던 돈도 날리고 고기잡이를 못 하게 되니 배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은행에서는 채무변제 연락이 오고 결국에는 그 채무변제가 나에게까지 날아오는 지경에 이른다. 

이 일로 내가 우려했던 말처럼 우리의 우정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겨우겨우 몸을 추스른 부인은 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부부싸움이 재현되고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이 친구 마침내는 세상을 등지고 만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비극이다. 

"그때 자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술집에서 푸념하듯 후회하며 한숨짓던 친구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진작 내 말을 진실로 믿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 ; 소설집 「딸 없는 사위」 「사주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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