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일상생활을 하면서 주변과 어울리다 보면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이 심해지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마치 옹이처럼 풀기 어려운 매듭이 자리하게 된다. 마음속에 생겨난 매듭은 원망의 대상이나 정도에 따라 꼬여진 강도가 달라서 어떤 매듭은 살아생전 끝내 풀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풀기 어려운 매듭이 생겼을 때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알렉산더 대왕의 ‘고르디온의 매듭’을 떠올리게 된다. 지중해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고, 그리스와 페르시아 문명을 융합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자 노력했던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설화 중에서 ‘고르디온의 매듭’이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알렉산더 대왕 시절, 고르디온 마을에 있는 제우스 신전 기둥에는 누구도 풀지 못하는 매듭이 묶여 있었다. 그 신전의 매듭을 푸는 자가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전설이 있어서 많은 이들이 그 매듭을 풀어보려 했지만 아무도 매듭을 풀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도 매듭을 풀어보려 했지만 역시 매듭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알렉산더 대왕도 신전의 매듭을 풀지 못하는구나 생각할 무렵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의 검을 뽑아 그 매듭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얽히고설킨 매듭을 차근차근 풀어보려고만 했을 뿐 그 누구도 잘라버릴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결국 알렉산더 대왕의 역발상(逆發想)이 단숨에 문제를 해결해 냈다. 현대판 ‘고르디온의 매듭’들이 사방에 널려있어 어떻게 풀어낼지 걱정이 많다. 악화일로(惡化一路)에 있는 한일관계에서부터, 풀리지 않고 있는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그리고 북미 대화. 걸핏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서도 끝없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계속하고 있는 정치권의 풀릴 줄 모르는 매듭.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려가 큰 나라와 지역 경제,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대학입시제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소득 격차, 심각하다 못해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는 출산율 저하와 노인 문제, 어느 것 할 것 없이 뒤엉켜 있는 국가적 난제들이 언제나 풀릴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든 차근차근 풀 수 없다면 알렉산더 대왕이 풀어낸 ‘고르디온의 매듭’처럼 단칼에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그러나 우리는 어느 것 하나 고난과 고통, 어려움 없이 손쉽게 엉클어진 매듭을 풀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면서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평화가 그리 간단하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해 왔으니까. 천재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데이비드 헬프갓’의 일생을 다룬 ‘샤인(Shine)’이란 영화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카데미도 휩쓴 명화라서 웬만한 영화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그런 영화다. 영화 샤인을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음악이 하나 있다. 협주곡 ‘사계(The Four Seasons)’의 작곡자로도 유명한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성악곡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라는 노래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음악 중에 단연 기억에 남아 있는 음악이다. 

기악이나 성악에서 소리를 가늘게 떨어서 내는 비브라토(vibrato) 기법을 거의 쓰지 않고 부르는 소프라노의 티없이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정말 평화롭고 자유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어떤 상처도 극복하고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은 감동을 주는 노래의 제목이 하필 왜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일까? 언뜻 느끼기에는 온 세상 그 어디에도 진정한 평화란 있을 수 없다는 의미로 오해하기에 충분한 그런 제목이다. 그러나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금방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목과는 달리 가사에는 고난, 고통, 어려움 없이 그 어떤 평화도 그냥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노래한다. 

‘세상 어디에도 고난없는 참 평화란 없도다’가 내용에 알맞은 제목일 것 같은데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라니. 곱씹어볼수록 함축성이 크고, 잠시 생각을 하게 하는 매력있는 노래 제목이 아닐 수 없다. 한 시인은 매듭을 풀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기분 좋은 날’이란 시에서 재미있게 표현한다. "한 번 매이면 풀어지지 않는 너를 달래려 촛불을 밝힌다. 작을수록 가슴 말아쥐고 숨어버리는 너를 달래려 안경 도수를 높인다." 잘 풀리지 않는 매듭을 끝까지 풀기 위해 잘 보이지 않는 안경도수를 높이고, 촛불까지 밝혀 매듭을 풀어가는 모습이 그림처럼 느껴진다. 고난과 고통,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상에 참평화를 만들고자 노력해온 우리 삶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어 애잔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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