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되고 싶은 상상의 모습을 진짜 자아라 착각하는 심리 상태를 ‘보바리즘’이라 부른다. 1857년 소설 「보바리 부인」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감정적·사회적 불만족 상태가 빚어낸 헛된 야망이나 상상적 도피를 뜻한다.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유명했던 이 소설은 당시 풍기문란 혐의로 기소될 만큼 논쟁적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유부녀의 불륜을 소재로 한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그 내면은 삶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욕망이 빚어낸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마담 보바리(2015)’는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일상에 안착하지 못한 미숙하고 연약한 보바리 부인의 위태로운 심리 상태가 훌륭하게 표현돼 있다. 

엄격한 수도원에서 소녀시절을 보낸 엠마는 규율이나 관습에 순응하기보다는 이를 답답하게 여긴다. 언제나 여기가 아닌 다른 곳, 새로운 곳을 꿈꾸던 그녀는 의사인 찰스와의 결혼이 자신을 낭만적인 세계로 이끌 거라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남편을 따라 정착한 용빌이란 동네는 작디작은 시골이었고, 찰스는 규칙과 성실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변화보다는 익숙한 삶을 추구하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엠마를 지루하게 했다. 무덤덤한 남편의 성격 또한 엠마의 외로움을 가중시켰다. 그렇게 이곳에 대한 염증이 깊어질 즈음, 그녀는 모험과 변화를 즐길 줄 아는 남성들에게 빠져들었다. 값비싼 드레스와 사치품을 사들이는 것도 지루한 현실을 피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그러나 깨고 싶지 않던 환상은 감당할 수 없는 빚과 연인들의 배신으로 각성됐다. 되돌릴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엠마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엠마 보바리의 죽음의 원인은 보는 시각에 따라 사치, 불륜, 현실 불만족,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당시 사회상 등으로 다양하다. 자아를 찾지 못한 것도 비극의 출발이라 하겠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나 품고 있는 야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바리 부인의 비극은 채울 수 없는 외부의 허상을 부러워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이곳의 내가 아닌 저곳의 타자가 되길 희망했고, 그 허상을 실현하는 데 역점을 뒀다. 그런 이유로 무리해서 귀족과도 같은 살림살이를 추구했고, 남편이 유명한 의사로 거듭나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 주길 염원했다. 그러나 거짓 욕망을 채우려 할수록 더 큰 결핍이 드러나 공허함만 깊어진다. 결국 원론적인 해답이지만 엠마의 죽음을 막을 방법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 마주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자 딜레마이기 때문에 환상으로 도피해 추락하는 보바리 부인에게서 연민을 느낀다. 

원작을 충실히 각색한 영화 ‘마담 보바리’는 매력적인 배우들에 의해 훌륭하게 재탄생됐다. 특히 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이뤄지지 않을 미래의 불안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주연배우의 열연으로 잘 표현됐다. 이 작품만의 독특하고 신경증적인 에너지를 통해 거짓 욕망의 허상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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