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 경제 등 우리 시회에 우울한 소식이 연일 들리고 있는데 내수 부진으로 경기침체가 오래갈 것이라는 이야기와 정치권은 조국 사태로 두 달이 넘도록 정쟁만 일삼고 있다. 남이야 어찌 되든 나에게 고통만 없다면 이웃의 괴로움에 눈을 감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조선시대 말을 맡아보던 하인을 가리키는 ‘거덜’에서 유래한 ‘거덜나다’ 의미를 생각해 본다. 거덜은 주로 ‘나다’ 또는 ‘내다’와 함께 쓰이며, 재산이나 살림 따위가 여지없이 허물어지거나 없어지는 상황을 표현할 때 이 말을 사용한다. 다른 뜻으로 옷이나 신 따위가 해지거나 닳아지는 것, 또는 하려던 일이 결딴나는 것을 뜻하는데 그럼 거덜의 유래는 무엇일까?

조선 시대에는 사복시(司僕寺)에서 말을 돌보고 관리해 주던 하인을 ‘거덜’이라고 칭했는데, 즉 임금이나 높은 사람을 모시고 뒤에서 따라가며 잡인의 행동을 통제하고 권마성을 외치던 하인을 말한다. 조선시대 거덜의 역사는 오늘날의 종로 뒷골목 피맛골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지체 높은 양반 곁에서 "쉬~ 물렀거라!" 하고 거들먹거리며 목청을 길게 빼어 외치던 거덜은 길거리에서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다고 한다. 그래서 주요 통로였던 종로 주변 백성들의 고통이 만만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높은 관리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굽히며 예를 갖춰야 했는데 이처럼 일일이 예를 갖추다 보면 도무지 갈 길을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행차가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하니 해야 할 일을 못하기 십상이었다. 여기에 ‘거드름’이라는 말까지 ‘거덜’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사복거덜’의 허세가 어느 지경이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게 된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피맛골로 이른바 아랫것들은 아예 구불구불한 뒷골목으로 다니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던 것이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서민들이 이용하다 보니 피맛골 주위에는 선술집이나 국밥집 등 술집과 음식점이 번창했다. 높은 사람의 말을 피한다는 데서 온 말이지만 사실은 그 말 옆에서 권세를 앞세운 거덜의 난폭함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횡포가 오죽했으면 ‘모든 것을 몽땅 털어먹다’는 뜻의 ‘거덜나다’라는 말이 여기에서 생겨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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