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어디로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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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어디로 가고 있나?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19.10.09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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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한국전쟁이 장기화되자 여기에 부담을 느낀 미국은 한국에서 발을 빼기 위해 서둘러 휴전 절차에 돌입했다. 그러자 이승만은 이에 맞서 휴전협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 2만7천여 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 압력에 굴복해 미국이 이승만 정부와 맺은 협정이 올해로 66주년을 맞이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이승만의 평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법적 구속력을 갖춘 조약 체결로 인해 한국은 비로소 경제적·심리적으로 과중한 안보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어 강화된 미국의 한반도 전쟁 억지력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안정적으로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1970년대까지 남한은 반공과 멸공을 앞세운 반미 무풍지대였다.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기점으로 해 1980년 12월 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19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인 반미운동의 서막이 열렸다. 60년대와 70년대 4·19세대와 유신세대의 학생운동과 80년대 386세대의 학생운동도 바로 이 반미 투쟁 여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집권 기간 DJ와 노무현 정부는 자주 외교를 지향하면서 미국과 불편하고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었다. 한편, 지금 정권 또한 겉으로는 친트럼프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반미적이다. 전투기를 비롯해 미국의 비싼 무기를 구입하거나 구입하겠다는 트럼프에게 한 약속이 우리의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함이거나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 때문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 해제 때문이라는 혐의를 지우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한일관계가 냉각되고 한미동맹이 균열을 보이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노골적 도발이 자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특히 한국의 외교, 안보가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적성국의 힘은 우리의 억지력이 약하거나 없으면 분출되며 그래서 힘이 없는 나라는 터지고 깨지고 짓밟힌다. 

현재 대한민국은 주변국들의 경제적·군사적인 힘을 단독으로 막아낼 만한 능력이 아직은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스스로를 감성적으로 과대평가하는 것은 더 큰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힘이 약하면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맹자가 말한 대로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기는 현실적 지혜와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추구하지 않았던 조선은 결국 왜군과 오랑캐에 의해 온 강산이 피로 물들었다. 

일제에 대한 원망, 미국에 대한 배타 이전에 명심해야 할 일은 이 모든 사태의 궁극적인 책임은 약자인 우리 자신에게 있었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에서 힘 없는 국가의 백성들은 수탈과 강제로 신음하고 징용과 정신대로 이끌렸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결국 전쟁과 분단의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이 단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전자는 명나라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후자의 경우에는 실리 외교로 전쟁을 미연에 막아야 했다. 그러나 명나라는 조선의 군사적 동맹국이 아니었으며 청나라와의 외교는 실패했다. 지도자와 집권세력의 오판과 무능력으로 인해  두 차례 비극적인 전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조선은 이에 대한 대책과 방비가 전혀 없었다. 미래는 현재를 토대로 열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에 집착해 당면한 문제의 직접적 해결을 아득한 시절의 유토피아에 대한 그리움으로 대체했다. 

1980년대 시절의 이념과 기억을 토대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행태는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 정의와 이상과 도덕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국정 운영에 관여하고 정치에 개입할 때, 국가적으로 그 부작용과 폐단은 상상외로 심각하다. 정조는 당면한 현실에 어둡고 무감각하고 무능한 군자가 권력을 쥘 때의 위험과 혼란을 경계하며 물정에 어두운 소인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은 바로잡을 수 있지만 재주와 덕이 없는 군자가 나라를 망치면 회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작금의 사태를 되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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