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순 인천문인협회 이사
김을순 인천문인협회 이사

언니와 나는 오랜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강화 친정 나들이에 나섰다. 언니는 남매를 뒀고 나는 딸아이를 하나 뒀다. 가는 길에 버스가 있었으나 어릴 적 다니던 꼬불꼬불 작고 좁은 길로 걸어가기로 했다. 언니와 나는 야산 길을 걸어가면서 "언니 밤에 이 길을 걸어가면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파란 달이 무서워 보였지요." "어릴 때라서 그랬지." 지난날을 기억으로 더듬어본다. 강화읍에서 큰길을 걸어서 나오다가 작은 길에 들어서면서 두 노인이 살고 있는 착한 할아버지 집을 지나고, 붉은 고개를 넘어서면 서낭당이 보인다. 논두렁길을 지나서 회골 모퉁이를 지나가는데 모퉁이에 억새풀이 모여서 하얀 수염을 흩날리고 길게 늘어뜨린 잎들은 허리에 찬 칼과 같다.

- 총총히 모여 서 있는 억새풀은 무엇을 하나/방싯 방싯 웃고 있는 들국화를 바라보고 있네/보라 꽃 쑥부쟁이도 웃고 있네/바람은 속삭이듯 물어보며 잔솔밭을 지나가네 -

고향 가는 마음은 마냥 즐겁다. 아이들도 좋은지 뛰다 걷다 하며 노래를 부른다. 우리가 살던 집 뒤에는 과수가 몇 그루 있었다. 6월에 먹는 복숭아도 있고, 어른 주먹만 한 홍도 복숭아나무도 있었다. 홍도 복숭아를 따려면, 나무가 키가 커서 나무에 올라가서 따기도 하고 커다란 바지랑대에 올가미를 만들어 복숭아를 걸어서 따기도 했다. 가을이면 밤나무에 밤송이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바람이 부는 날엔 낮에도 떨어지고 새벽에 나가면 떨어진 밤으로 바닥이 누렇다. 새벽이면 날이 밝기도 전에 언니와 오빠는 밤을 주우러 나갔다. 나는 잠도 많고 무서움을 타서 따라 나서지 못하고 이불 속에 있다가 창문밖이 훤해져야 밖에 나갔다. 

그때 일어나서 눈 비비고 나가면 벌써 언니와 오빠는 밤을 바가지에 가득 주워서 앞에 놓고 나무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나를 기다린다. 늦게 나간 나를 골려주려는 것이다. 우리 뒤란 담장은 좀 길었다. 그 옆으로 길이 나 있는데 장날이면 장 보러 가는 길이고, 학교 가는 길이기도 하다. 건넛마을에 사는 금례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학교를 다녀오다 집으로 가면서 우리 집 담장에 호박이 열기만 하면 그걸 똑 따서 가방에 넣어 갖고 갔다. 그 손버릇을 지켜본 언니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금례 언니는 왜 그랬고 언니는 동네 언니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대했을까? 그때의 기억은 우리 자매에게 웃음을 안겨줬다. 

그렇게 고향길을 가는데 저 앞에서 오토바이 하나가 달달 거리며 오더니 우리 앞에 멈췄다. 한 남자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의 이름은 김일현, 우리 집안 손자뻘 되는 청년인데 동네 들어서면서 만난 그가 반가웠다. 손을 잡고 그간에 궁금했던 어른들 안부도 묻고 동네 안부도 물었다. 우리 친정집은 안동 김씨 후손으로 정확하게 26가구가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사는데 우리의 촌수가 높아서 할아버지 조카님도 있고 어른 손자도 있었다. 일현 손자는 읍내에 연장을 사러 간다고 하면서 곧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오토바이를 달달 거리며 휑하니 가버린다. 

"저 아저씨는 누구예요?" 아이들이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궁금해해 외가 친척으로 엄마 손자뻘 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친정집이 멀리 보인다. 아이들은 외가 마을이 보이자 뛰어간다. 우리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큰 오라버니가 마당 끝에 서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서 있다. 오빠 부인인 큰 언니는 팔을 휘저으며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아이들은 외숙모에게 인사하고 또 달려간다. 언니와 나도 부지런히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인간은 타향에서 태어난다. 산다는 것은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다’라는 서양 명언이 있다. 나에게 동심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바쁜 일상에서 잊고 있었던 고향을 찾는 일도 문학의 한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필자 : 2014년 6월 「한맥」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혼자 구르는 돌」, 「키칠쿰」 한맥문학협회 회원. 인천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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