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민족 쿠르드에서 배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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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민족 쿠르드에서 배울 점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 기호일보
  • 승인 2019.10.25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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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쿠르드족은 지구상에서 약소민족의 설움을 대변하는 상징이나 다름없다. 인구가 2천500만에서 3천500만 명을 헤아리고 독립된 언어와 문화·역사를 갖고 있지만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채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에 걸쳐 살고 있는데다 그들의 처지는 거주하는 국가에 따라 크게 다르며, 국제적인 위상에서도 차이가 난다. 

이라크에서는 강대국들의 배신을 여러 번 겪고 북부지역에서 자치권을 얻는 데 이르렀으나 터키와 시리아에서는 독립과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투쟁과 강력한 억압 정책으로 희생물이 되고 있다. 

쿠르드인은 대부분 이슬람 수니파에 속한다. 대표적인 인물은 십자군과 싸웠던 아이유브 왕조의 설립자 살라딘. 

요즘 지상에 오르내리는 성전(聖戰 : jihad)을 다마스쿠스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이교도 배척의 무력 투쟁을 제시한 대표적 인물, 바로 그다.

그는 역사적으로 분열 경향이 강한 이슬람 세계를 통합할 수 있는 수단은 종교밖에 없다고 여겨 성전을 선언했으나 그의 진정한 능력은 전술에서 특히 빛났다. 

당시 십자군은 중무장한 기병으로 무리를 지어 돌격하는 모습은 가히 천하무적이었다. 사실 중무장한 십자군 기병은 자신들보다 열 배 많은 병력도 충분히 물리칠 힘을 갖고 있었다.

살라딘의 이슬람군은 경무장 기병으로 수효가 많을지라도 위세를 떨치기 어려웠다. 여기서 살라딘은 병사들에게 ‘중무장한 적을 찌르기보다 먼저 말을 찔러 쓰러뜨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건조지대인 만큼 ‘물’ 공급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는 작전을 구사했다.

이리하여 1187년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요르단 강가의 하틴에서 십자군 주력을 격파해 이슬람의 수호자로 명성을 획득했다. 당시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와 대결하는 살라딘의 모습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러 차례 보여준 바도 있다.

쿠르드의 영웅시대 이후, 오스만투르크와 페르시아-이란계 세력이 각축하는 사이에서 부침을 거듭한 쿠르드는 19세기 후반 근대적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아 마침내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 공로로 독립국의 기회를 얻게 된다.

영국 등 연합국이 오스만제국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쿠르드에 독립국가를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1920년의 세브르 조약이 3년 후 로잔 조약으로 대체되면서 이 약속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결국 쿠르드족은 여러 차례 무장투쟁을 벌였으나 터키 등의 강력한 진압과 이주 정책에 커다란 희생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강대국의 배신과 터키·이라크·시리아 정부의 호된 억압 속에서 쿠르드족은 더욱 강력히 저항했고, 걸프전에서 후세인 정권에 대항해 미군을 도운 덕택에 자치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으나 독립국의 꿈은 또다시 배신당하고 말았다.

독립을 향한 쿠르드의 꿈을 더 자극한 건 이슬람국가(IS)가 탄생하고 중동 지역을 석권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미국은 이 싸움에 협조하면 독립 또는 시리아에서의 자치정부 수립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

쿠르드 민병대의 활약이 돋보인 건 이런 배경에서였다. 그런데 이슬람국가가 궤멸 상태에 빠지자 함께 싸웠던 미군이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미국 공화당의 매코널 상원의원이 정면으로 비판한 이른 바 ‘전략적 악몽의 시리아 철군’이다. 이 기회를 틈타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의 지역을 공습하고 군대를 보내 거점 도시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터키를 경제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이를 철회하면서 5일간의 휴전을 합의했다. 이 합의 역시 일시적 봉합이란 건 자명하다. 터키군의 공격은 재개될 것이고 쿠르드의 입장과 주민들의 입장은 도외시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서 쿠르드를 이용하고 버렸다고 할 수 있다. 매코널 의원은 "우리가 파트너를 버리고 전투에서 이기기도 전에 철수했다"고 비판한 이유다.

또다시 ‘토사구팽’ 당하는 쿠르드족.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약소민족의 비애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평화체제, 전쟁 종식 등 구호성 안보란 허구다. 전쟁이란 회담 한번 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이기든 누가 지든 둘 중 하나의 결말이 나는 것일 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국제 정세 역시 별로 다를 바 없다. 힘이 없으면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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