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미추홀구 ‘유유기지’에서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청년들이 미추홀구 ‘유유기지’에서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청년활동 기반이 취약했던 인천에서도 최근 몇 년간 거점공간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시작됐다. 

인천시는 2016년과 2017년에 걸쳐 미추홀구 ‘유유기지’와 중구 ‘청년문화창작소’ 등 인천 청년공간 조성계획을 세우고 사업에 착수했다. 그동안 청년을 대상으로 한 역점사업이 많지 않았기에 청년공간 조성사업은 큰 기대를 모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청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진행했던 사업이 행정 중심의 추진 과정으로 변질되는 일이 수차례 있었던 터다. 

유유기지의 경우에도 시가 미추홀구 도화동 제물포스마트타운 15층으로 장소를 이미 정해 놓고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하면서 일부 반발이 일었다. 하지만 시는 준비단계에서 서툴게나마 청년들의 의견을 청취하려는 시도를 지속했고, 그 결과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청년과 행정의 거버넌스가 이뤄질 수 있었다.

사업 구상 단계부터 대학생, 창업가, 예술인 등 지역 청년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시는 설계 전까지 청년들과 네 차례 모임을 진행하며 ‘다양한 청년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 과정에서 포토존, 사이키 조명 설치와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도 나왔고, 공간 입주를 희망하는 청년창업자들도 하나둘 참여하기 시작했다. 

청년이 원하는 공간을 설계로 구현하는 일 역시 청년이 맡았다. 서울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를 설계한 청년기업이 수차례 지역 청년들을 만나며 계획을 구체화했다. 테라스를 요즘 유행하는 루프톱 형식으로 꾸미거나 취업컨설팅 공간 조성 방식을 달리하는 내용 등은 청년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청년들이 스터디에 집중하고 있다.
청년들이 스터디에 집중하고 있다.

유유기지의 ‘유유’는 언어유희에 착안해 지어졌다. 움직임이 한가하고 여유 있으며 느리다는 뜻의 ‘유유(悠悠)하다’와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는 뜻의 ‘유유(愉愉)하다’, 그리고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산다는 뜻의 ‘유유자적(悠悠自適)’에서 따왔다. 

‘기지’란 다른 목적지에 가기 전 잠시 머물러 충전하고 준비하는 공간이다. 즉, 이 공간은 학업, 취·창업, 스펙 쌓기 등에 지친 청년들의 쉼과 도약을 준비하는 편안한 베이스캠프로 활용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구상됐다. 

총면적 862.52㎡의 유유기지에는 코워킹과 스터디가 가능하도록 개방된 창의기지와 속닥기지, 스터디룸으로 분리된 독립기지가 있다. 작당기지나 유유랩에서는 그룹 스터디나 청년 모임, 컨설팅 등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행사와 교육을 하는 유유홀과 청년 휴식공간인 충전기지, 공중기지가 있다.

이곳에서 취·창업 지원과 역량 강화 프로그램, 청년 교류 등 10개 프로그램이 연중 운영된다. ‘IN-JOY’라는 명칭의 모임 지원사업은 청년들이 즐겁게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활동비를 지원한다. 다양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성한 모임을 지원하고 정보 공유와 소통을 유도해 사회활동에 대한 동기와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상·하반기 총 100개 팀을 선정해 팀별로 60만 원을 활동비로 지원하고 있다. 또 네트워킹 데이를 열어 유쾌한 활동과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응원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청년들만의 장을 열었다. 일대일 전문가 컨설팅을 통해서는 입사지원서 첨삭 및 모의 면접 등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했다.

유유기지 ‘네트워킹 데이’ 참여자들.
유유기지 ‘네트워킹 데이’ 참여자들.

2017년 개관 후 최근까지 유유기지를 찾은 청년들은 3만5천605명이다. 유유기지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하루 51명이던 방문자는 올해 91명으로 늘어나는 등 지역의 청년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유유기지와 비슷한 시기 시가 구상했던 또 다른 청년공간으로는 인천청년문화창작소가 있다. 유유기지가 청년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공간이었다면 청년문화창작소는 청년예술가와 기획자에 초점을 맞췄다. 중구 전동의 옛 인천여고 건물을 활용해 거점공간을 만들겠다는 목표였지만 그 과정에는 여러 부침이 있었다.

시와 청년들의 협의 과정이 있었으나 좁은 건물을 타 기관과 공동 사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하다는 청년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하고자 하는 사업의 방향성이나 그 목적도 불분명했다. 결국 공간만 정해 놓고 무엇을 담을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이 때문에 2018년 청년문화창작소 운영을 맡은 인천문화재단은 청년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논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재단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예술가와 기획자가 함께 공간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청년 밥상공론’을 2018년 12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총 7회에 걸쳐 진행했다. 밥상공론에서는 다양한 활동 분야의 예술가와 기획자가 만나 청년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의견을 냈다.

유유기지 ‘네트워킹 데이’ 참여자들.
유유기지 ‘네트워킹 데이’ 참여자들.

문화예술에 특화되거나 전문성을 가진 청년 거점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창작소는 ‘공유 공간’과 ‘문화예술 기획’을 중심으로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모였다. 하나의 분야로 특화된 오픈스페이스 형태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여러 요구가 반영된 복합적인 공간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재단은 청년들의 다양한 요구를 합리적으로 수용·정리할 수 있는 생산적인 토론 구조를 마련하는 것을 우선으로 보고 공동운영단을 꾸렸다. 

청년문화창작소 공동운영단은 인천지역 문화예술인과 청년예술가·기획자 등 4인으로 1기가 짜여졌다. 공간 운영 경험을 가진 청년과 개인 창작 작업 세대 결합 프로젝트 경험을 가진 청년이 중심이 됐다. 공동운영단은 청년문화창작소의 운영 방향, 공간 구성, 사업 기획 등을 함께 논의하고, 특히 1기의 경우 시범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획사업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

이들이 기획한 첫 사업인 ‘소규모 작품집 만들기 워크숍’은 29일과 오는 11월 5일 2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창작자들에게 작품집은 자신의 작업물을 기록하고 홍보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지만, 많은 창작자들이 그래픽디자이너를 따로 섭외해 제작을 진행하기는 어려운 여건이다. 또 디자이너와 협업하더라도 디자인 실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정확한 의사소통을 이루지 못해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번 워크숍에서는 디자인 실무부터 인쇄 주문 과정까지 작품집 제작에 요구되는 전반의 흐름을 다룬다. 

11월 12일 이어지는 ‘자기작업 SNS 홍보마케팅 워크숍’에서도 창작자들이 어려워하는 홍보마케팅 기술과 노하우를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다.

중구 ‘청년문학창작소’ 외관
중구 ‘청년문학창작소’ 외관

청년문화창작소가 올해 계획한 마지막 사업은 ‘연대를 통한 예술활동의 가능성 모색’을 주제로 한 세미나다. 인천 안팎으로 수많은 문화예술활동가들이 존재하지만 활동이 가시화되지 못하고 장기적인 동력을 공급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 간 연대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활동가 개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을 지속시키거나 거대한 기성 제도권을 상대하는 데 있어 문화예술활동가들의 연대는 필수 요소로 꼽힌다. 

청년문화창작소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실제 다양한 방식의 연대 사례로 예술가 개인이 돌파하기 힘든 지점들에 대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지역 창작활동 기반을 만들어 가기 위한 네트워킹의 장을 마련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올 한 해 청년문화창작소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했다면, 202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청년들에게 공간을 열 계획이다. 

청년들이 이 공간들에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것은 ‘청년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요자인 청년들의 필요에 따라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청년이 중심이 된 운영 방식과 확장성, 지속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공간마다 특징을 갖지 못하고 취업과 스펙 쌓기를 위한 목적에만 머물러 있거나 청년들이 찾기 힘든 위치와 운영시간 등의 제약은 기존 공간과 앞으로 생겨날 공간 모두가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현식 인천문화재단 개항장플랫폼준비본부장은 "청년문화창작소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의 요구를 취합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이라며 "공동운영단의 기획으로 올해 예비사업이 시작됐고, 내년에는 사업 내용을 보다 다각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사진=<인천시·인천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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