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동 인천시 중구 우현로
이강동 인천시 중구 우현로

일본의 이세(伊勢)는 바닷가 마을 지명이다. 인천과 역사적 문화연원이 있었다. 일본 최마집의 풍속가에 이세인은 신분이 천하지만 용맹하고 바다 생활을 즐긴다고 했다. 일본 역대 왕들의 태조인 천조대신이 2700년 전 이곳에 터를 잡고 나라를 평정한 곳이다. 그의 신전이 있는 이세신궁도 있다. 일왕이 퇴임의식을 할 때 3종의 신기를 봉헌하며 거행되는 곳이다. 3종의 신기는 공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울은 팔촌의 크기로 동그스름하고 곡옥도 팔면으로 다듬은 것으로 나온다. 청동검은 용맹, 청동거울은 지혜, 곡옥은 인자의 덕을 갖고 있다는 일본 학자의 해석도 있다. 천조대신이 사용한 무기를 몇 가지가 더 있다. 천경창, 모창, 방패가 있다. 일본 왕실의 대상제에 방패가 봉헌된다. 남나무 널판판지에 쇠가죽을 붙인 방패다. 청동거울을 주조하는 공정은 한·중·일이 같았다. 

 우리는 고조선에도 청동검, 청동거울, 곡옥이 있었다. 우리의 청동거울은 동그스름한 것이 많았다. 문양은 바다나 선박, 사람, 용 등 17개 문양이 있으며 청동거울과 같이 출토된 염구에서는 분가루도 나왔다. 여진족의 여진문자가 있는 청동거울도 출토됐다. 곡옥은 한·중·일 옛 사람들이 액막이로 몸에 지니는 풍속이 있었다. 청동검, 청동거울, 곡옥은 우리의 전지역과 인천에서도 출토됐다.

 인천 강화 마니산 참성단은 하늘에 제례하고 천문 관측하는 제단이었다. 천문관측에 뛰어난 기능과 경험을 축적해 놓아 절기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이었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농업, 원예, 과수, 잠업 등을 계절에 따라 심고 가꾸고 하여 풍요를 바라며 살아온 우리의 농경역사가 있는 것이다. 일본왕실에서도 농경제례를 해 왔다. 천조대신이 사용한 것으로 왕실에 전래하는 땅을 갈아 엎을 때 사용하는 쟁기가 있다. 일본 불교사찰 동대사에 758년 헌납됐다. 동대사 내 일본 왕실의 유물수장고인 정창원(쇼소인)에 보관돼 있다. 쇠 부분은 금과 은으로 감싸고 고초, 꽃, 나비, 새 문양을 새긴 쟁기 호미(鋤)다. 일제강점기 천조대신이 사용한 쟁기와 같은 것을 찾으려고 일본 전역과 우리나라 곳곳을 샅샅이 찾았다. 일본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인천 덕적도에서 그것과 똑같은 형식의 쟁기를 발견한 것이다. 문화연원에 놀라워했다. 총독부 농사시험장 직원인 타카하시가 덕적도에서 찾아낸 것이다. 당시 총독부 박물관에 보관됐다. 

 일제강점기 일본 어민들이 인천까지 와 어업활동을 했다. 인천 토종어류들을 싹쓸이해 갔다. 인천 바다에는 토종새우도 많았다. 3월∼10월까지 일본 어민들이 초주어망으로 새우들을 매년 잡아간 것이다. 토종새우 중에 일본 이세 지명과 같은 이세 새우가 있었다. 인천 토종 새우에 어떻게 이세라는 품명을 갖게 된 것인지 재미 있는 연원이 있어 보인다. 

 고조선시대 천문관측 기록물 신지비사가 있는 우리는 중국·일본보다 천문관측에서 앞서 있었다. 백제 때 천문관측 지식을 일본에 전수해 준 것이 554년이었다. 이 자료를 토대로 농사 짓고 생활해 오던 일본은 새로운 역서를 제작한다. 1888년 일본 내무성 지리국에서 역서가 편성됐다. 

 동경제국대학과 동경 천문대에서는 역서의 원본을 작성하게 된다. 역서의 원본을 인용 태양력의 달력이 이세 신궁의 궁사청 봉제회에서 인쇄하고 왕실, 왕족, 관공서, 일반에 배포했다. 달력을 독점적으로 제작하고 배포하는 특권을 일본 정부로부터 받았다. 달력을 이세력이라 불렀다. 이 영향으로 일제 초기 우리는 대한 명치력(대한력)이 사용됐으며 우리의 전통 풍속인 단기, 음력, 민속신앙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말살시키려고 압박이 시작됐다. 고려의 풍속이 이어져 왔던 바닷가 마을 인천 만석동의 해양 민속문화였던 서해용궁 제례의식이 끊긴 원인도 이세신궁의 이세 달력의 영향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문헌이 있으므로 작약도의 옛 이름 물치도 지명 되찾기와 함께 만석동의 서해용궁 제례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자그마한 서해용궁각을 만석부두에 복원해야 만석동의 마을 역사가 바르게 정립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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