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부평구 청년인력소의 정예지(33)대표가 인터뷰 중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천시 부평구 청년인력소의 정예지(33)대표가 인터뷰 중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역에 많은 청년정책과 공간들을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이 일자리나 창업 지원에 치중돼 있어요. 청년인력소는 꼭 경제활동에 제한되는 것이 아닌, 취미와 가치관 등 모든 것을 담기 위해 열어 둘 계획입니다."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라이브 공연장 ‘락캠프’에는 달마다 모여 수상한 파티를 여는 청년들이 있다. 바로 새로운 사업을 함께 기획하거나 동료를 찾기 위한 청년 모임 공간 ‘청년인력소’와 정예지(33)대표다. 

스스로를 인천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며 문화기획자이자 ‘우주의 아이돌’이라고 소개하는 정 대표는 청년공작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갑자기 번뜩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청년인력소는 사업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지만 함께 할 인력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청년에게는 동료를 찾아주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청년들끼리는 자체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하는 모임이다.

‘네트워킹 파티’ 공연 모습.
‘네트워킹 파티’ 공연 모습.

청년인력소는 정 대표가 우연히 지인을 따라 인천문화재단 지원사업 결과 발표회에 참석했던 날 시작됐다. 발표회를 통해 정 대표는 각자의 분야에서 재밌고 참신한 문화기획 활동을 하는 많은 청년들을 알게 됐으며, 재단을 통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 발표회에 참석했던 청년들이 동료들을 구하지 못해 수많은 창작활동 아이디어들을 그저 묵혀 두고 있는 고충을 토로했다. 그 순간 정 대표의 머릿속에는 청년인력소 구상이 떠올랐다. "내가 한 번 판을 만들어야겠다."

결심을 하고 나니 그 뒤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뒤풀이를 끝내고 돌아온 날 바로 SNS 페이지를 개설한 뒤 포스터와 로고를 제작하고, 모임 일정과 장소를 정해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청년인력소의 첫 모임에는 3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지금도 빠르면 한 달에 한 번, 늦으면 1년에 한 번 주기적으로 ‘네트워킹 파티’를 연다. 

‘네트워킹 파티’에 참가하는 법은 간단하다. SNS를 통해 참가 의사를 밝히고 참가비 1만 원을 지불하면 매달 넷째 주 일요일 오후 부평 락캠프에 모여 파티를 한다. 파티장 입구 접수대에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그날의 기분을 적는다. 각자의 개성과 사연을 담아 작성한 구직 프로필을 벽에 걸어 두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비슷한 관심사를 가졌거나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파티를 할 때마다 평균적으로 20∼30명의 청년들이 모이고, 그 중 적지 않은 수의 청년들이 동료를 찾아갔다. 직업도 디자니어, 장례지도사, 웹툰작가, 연극배우, 기타 연주자 등 다양하다 보니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네트워킹 파티’ 공연 모습.
‘네트워킹 파티’ 공연 모습.

정 대표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발굴해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해 주는 일에서 보람을 많이 느낀다"며 "공포 웹툰을 연재하는 한 청년은 청년인력소에서 메탈음악을 하는 밴드와 만나 뮤직비디오 제작을 함께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큰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많은 청년들이 오가면서 불현듯 떠올리는 아이디어는 놓치지 않고 바로 실행한다. 그 중 하나가 당시 지역신문에서도 화제가 됐던 ‘인천시청 부채춤 퍼포먼스’다. 인천시 부채가 10조 원에 달했을 때 2인 1조로 총 10조 원 부채를 만들어 20명이 시청 앞 계단에서 부채춤을 추는 내용이었다. 지역 청년들이 연대해 지역사회 문제를 공론화하고 재밌게 풀어내기 위한 취지였다. 

이 외에도 인천 아시안게임을 패러디한 ‘와장창 아시안게임’에서는 1시간 거리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며 향초로 성화 봉송을 하고, 아시안게임에 들어간 예산 4천900억 원을 상징하기 위해 4천900원 도시락 먹기 대회를 열었다. 지구 종말 2분 전의 상황과 심경을 상상해 보는 ‘지구 종말 사운드 파티’,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자신감을 되찾고 서로를 격려해 주는 놀이워크숍 ‘여름환생학교’도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청년인력소가 자리잡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장소 물색이었다. 현재 청년인력소가 있는 락캠프는 정 대표의 부모가 운영하는 공간으로, 가게가 운영하지 않는 시간대를 골라서 대여료 없이 사용하고 있다. 본래 독립적인 장소를 마련하고 싶었지만 넓은 공간과 뛰어난 접근성 등을 모두 갖춘 곳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청년인력소는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려움은 더욱 컸다. 그 대안으로 유휴 공간 활용을 선택한 것이지만 정 대표는 이마저도 운이 좋아서 가능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정 대표는 청년모임 등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락캠프처럼 지역 내 유휴 공간을 활용하고 망라할 수 있는 지자체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청년들 입장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대관할 수 있는 공간만 있어도 감사한 실정이지만, 정보와 자본 등이 부족해서 지역 내 유휴 공간 혹은 공유 공간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며 "인천문화재단이 동아리 활동이 가능한 공간을 매칭해 주는 지원사업을 올해 처음 시작했는데, 지역 내 정보는 지자체가 더 효율적으로 수집할 수 있으니 이 사업이 군·구에도 확장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이력서가 걸려 있다.
참가자들의 이력서가 걸려 있다.

또한 각종 청년 사업은 현장에서 수행하는 자가 청년임에도 사업을 주도하는 것은 결국 장년층이라는 사실을 꼬집었다. 청년정책과 지역 곳곳에서 생겨나는 청년 공간 운영에 청년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당장 생활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청년들에게는 직접 와 닿는 지원이 절실하다. 하지만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사업 참여 기회를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가 복잡해 되레 서류 작업에 시간과 에너지를 뺏겨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정 대표는 "지역에서 하나둘 늘어나는 청년 공간을 운영할 위탁사업자를 공모할 때 자본과 경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청년들은 안정성을 입증할 수 없어 배제되는 경우가 있다. 아직 부족하더라도 청년들을 믿고 지속적인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청년들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판을 깔아 줘야 한다. 청년들이 스스로 만드는 청년인력소가 되기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을 찾아나갈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유리 기자 kyr@kihoilbo.co.kr

사진=<청년인력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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