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경제학 박사>
임조순<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경제학 박사>

바야흐로 12월이다. 많은 이들이 이맘때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 모임으로 마음도 몸도 분주하다.

 한 해를 정리하는 일 말고 또 다른 일로 바쁜 곳이 있다. 내년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을 심사하는 의회가 그곳이다.

 연말에 있는 국회의 예산심사는 언론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상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결정 과정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이 현실이다. 

 당장 인천시의회에 제출된 내년도 인천시의 예산이 역대 최대 수준인 11조2천500억 원에 이른다는 것을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지방자치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도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국민들은 지방선거로 전국이 떠들썩한 시간을 빼고는 우리나라가 지방자치를 헌법적 가치에 두고 실천하는 국가임을 잊고 산다.

 왜 그럴까. 분권과 주민참여가 지방자치를 실현해 가는 수단이라고 본다면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나누는 분권은 크게 국가사무 비중을 줄이고 지역특성을 살린 지방사무를 늘리는 것과 재정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는 업무의 60% 이상이 중앙정부가 결정하는 일을 위임 받아서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지역 사정에 맞게 기획되는 업무보다는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일을 처리하는 지역사업소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예산은 어떠한가. 나랏돈의 60%가 지방에서 쓰임에도 불구하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수십 년째 80% : 20% 비율에서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소비세 비율을 높여 지방정부의 재정운용에 도움을 준다고 한 중앙정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방으로 와야 할 다른 명목의 돈줄을 차단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이니 해마다 예산철이 되면 나랏돈을 두고 중앙정부의 예산담당 직원들은 갑이 돼 선심 쓰듯 하고 지방정부의 고위급 공직자들은 을이 돼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시대를 열어 갈 또 하나의 수단인 주민참여분야도 아직 시작단계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인천의 경우 주민참여예산제도가 2010년 지방선거 이후 각 자치단체에서 실시되고는 있지만 참여하는 시민들이 제한적이고 제약이 많아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최근 인천시의 주민참여예산이 증액돼 사업이 확대됐지만 사업 추진 주체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일어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은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렇듯 지방자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인 분권과 주민참여가 아직 잘 작동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적 모델이 국가를 운용하는데 한계에 다다랐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 확대를 통해 국가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존재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 정부의 임기가 반을 지났다. 집권 세력은 지방자치의 실질화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과제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과감하게 국가사무를 지방에 이양하거나 지방사무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지역 주민의 현장감 있는 목소리가 동네에서 적용되고 변화하는 모습이 보일 때 자발적인 지역주민 참여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기초연금과 같이 모든 국민이 똑같은 기준으로 같은 정책의 대상자가 되는 사업은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사업에 대한 매칭 비용으로 대부분의 지방재정을 투입하고 있어 자치단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인 경우도 있다. 

 재정분권을 위해서는 국세, 지방세 비율의 조정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에 과세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돼야 할 것이다. 

 지역특성에 따른 세금이 부과되고 이 돈이 지역 사정에 맞게 사용될 때에만 지방분권의 완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무엇보다도 국민이 서둘러야 한다. 지금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지방자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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