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단연 구스타프 클림트가 떠오른다. 특유의 장식적인 아르누보 화풍은 금박의 사용으로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그는 기존 회화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과 독창적인 기법을 통해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강조했고, 유혹적인 에로티시즘의 정서도 드러냈다. 그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키스’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들 수 있다. 

특히 아델레의 초상화는 모델이자 화가의 뮤즈인 아델레 부인의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일명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이 작품은 나치 독일 시대에 몰수돼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 전시되는데, 이는 소장자인 아델레의 남편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은 원제인 유대인 이름 대신 ‘우먼 인 골드(황금의 여인)’로 불리게 된다. 현재 이 작품은 모국을 떠나 미국에 전시 중인데, 그 이유를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 영화를 통해 만나 보자. 

1998년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 이민자 마리아는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1948년 가족의 변호사가 남긴 편지를 발견한다. 그 문서에는 마리아의 집안 소유였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포함한 총 다섯 점의 그림 회수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마리아는 변호사를 고용해 국가(오스트리아)를 상대로 환수할 수 있을지 법적으로 자문한다. 

이 작품은 클림트의 금빛 그림을 모티브로 한 여인의 과거와 현재가 펼쳐진다. 그 과정 속에서 2차 대전, 홀로코스트와 같은 아픈 역사를 어루만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처에 집중하기보다는 ‘본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환수에 방점을 찍고 고통 치유에 초점을 맞춘다. 

전쟁과 나치의 횡포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터전을 잃어야만 했던 마리아가 가족 소유물을 되찾고자 하는 까닭은 개인의 행복과 관계 깊었다. 그림 속 큰어머니와의 즐거웠던 추억이라도 되돌려 받고 싶은 것이 마리아의 소유권 주장 이유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입장은 복잡했다. 왜냐하면 그 작품은 이미 국가적 보물에 해당하는 위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송을 통해 작품 소유가 원주인에게 돌아갈 경우 미국으로 이민 간 마리아를 따라 작품도 오스트리아를 떠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는 쉽게 결정 내릴 문제가 아니었다. 

마리아 역시 작품이 본국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가가 몰수해 간 사실을 인정하고 일정 금액의 배상금을 지불한다면 합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벨베데레 미술관의 입장은 단호했다. 어떠한 협상도 없고, 돌려줄 수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 결과 8년간의 긴 법정 다툼 끝에 작품은 원소유자에게 돌아가게 됐고, 마리아와 함께 작품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역사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면 결과는 충분히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 ‘우먼 인 골드’는 몰수된 예술품의 정당한 환수와 함께 예술작품이 갖는 공공성에 우선을 둬 작품을 국가 소유로 둘 것인지, 개인의 주관적 가치를 우위에 둘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시사점은 빼앗긴 우리 문화재의 현 상태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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