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홍콩의 범민주진영이 구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지난달 24일, 서울의 마포 홍대입구역에서 홍콩 민주화를 위한 목소리가 거세게 울렸다. 이날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함께하는 한국 시민모임’은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서 다양한 국적, 다양한 인종의 시민들과 연대집회를 열었는데 홍콩 현지의 시위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란 헬멧과 방독면을 쓰고 시위에 나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Free for HK’이라는 문구는 빗줄기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빛났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홍콩의 민주화, 물론 홍콩의 주민들은 홍콩기본법에 따라 자치와 민주주의를 누릴 권리가 있고 베이징 당국은 마땅히 이를 보장해야 한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영국으로부터 중국에 귀속되면서 이 두 나라 사이에 합의된 50년 기한의 홍콩기본법에 홍콩인에 대한 자치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양대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오늘날 인간은 누구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릴 권리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시위에 대한 태도를 보면 홍콩의 경우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걸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달 중순까지 홍콩의 시위에서 폭력적 진압으로 2명이 죽고(자살 9명), 수천 명이 다쳤다. 이에 비해 볼리비아 시위에서는 군경의 실탄 발사로 23명이 죽고 700여 명이 다쳤으며, 칠레에서는 17명이 죽고 2천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볼리비아나 칠레에 비해 훨씬 강한 어조로 서구의 언론이나 정부가 홍콩의 강경진압을 비판했고 미국 의회는 유독 홍콩에 대해서만 ‘홍콩인권법’을 통과시켜 마치 민주주의 수호자인 양했다. 중국 외교부가 "홍콩인권법은 미국의 노골적인 패권 행위로 중국 정부와 인민들은 단호히 반대한다. 중국은 반드시 단호하게 반격에 나설 것이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후과는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경하게 못 박은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역사적 측면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1842년 인류 역사상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마약을 공급하는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무력을 앞세워 상대를 제압한 후 국토의 일부를 빼앗아 가는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아편전쟁과 홍콩 점령이다. 난징조약은 승자가 강요한 불평등조약이었고 이후 구룡반도와 스톤워터스 섬을 포함해 1997년까지 차지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중국 측에서 보면 치욕의 역사이고 근대 100여 년에 걸친 굴욕의 역사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이후 홍콩은 영국의 지배하에서 대학이 설립되고 항만 시설과 공항 등 인프라가 갖춰져 금융과 무역 항만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해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홍콩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에 따라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홍콩 민주화 시위대의 주력은 영국 지배하에서 태어난 이들이 대부분은 아니지만 그 연원을 따져보면 깊숙이 연관돼 있다. 그들은 베이징 당국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비난하고 홍콩 정부 행정수반을 직접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민주주의의 선구자라는 영국 지배하에서 과연 그러했던가.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런던에서 보낸 총독에 의해 다스려졌었다. 오히려 지난 24일의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진영은 452석 가운데 347석(76.8%)의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올봄 시위를 촉발시켰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의 백지화에 이른 개가를 올렸다. 이는 홍콩 정부의 항복 선언을 받아낸 것이나 다름없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는 분명 지지해 줄 이유가 충분하다. 과거 우리의 민주화 시위와 연결시키는 일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베이징 당국의 처사는 그릇된 것이고, 서구사회(특히 미국의 경우)의 홍콩 민주화 지지는 마땅한 것이라는 속단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홍콩기본법의 시한은 오는 2047년 6월 말이다. 기본법을 합의할 때 중국은 영국과 영국이 대표하는 서구사회에 맞설 힘이 없는 탓에 이를 받아들여야 했었던 점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불편한 진실은 이외에도 더 있다. 영국 지배하에 주민들이 귀속 이후 이주한 중국인들은 이등시민으로 보는 것부터 과연 신자유주의 시대의 논리로 홍콩 민주화를 지지해야 하는 것인지까지 ‘끝이 정해진 험난한 길’의 여정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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