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失足容(오실족용)/吾 나 오/失 잃을 실/足 발 족/容 받아들일 용·얼굴 용

 도학선생(道學先生)의 풍도를 배우려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거리에 나가 길을 걷는데 사뭇 점잔을 부리며 뒷짐을 지고 발을 한 번 옮기는 데에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그러나 한참을 걷다 보니 허리가 아프고 등이 저려서 못내 피로함을 느꼈다. 그는 좌우를 한참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나서 종자(從者)에게 "뒤에 누구 따라오는 사람이 없느냐?"라고 물었다. 종자가 없다고 대답하자 그제서야 허리를 펴고 근엄한 표정을 풀며 편한 자세로 길을 걸었다. 또 한 사람이 거드름을 피우며 의젓한 모습으로 길을 가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그는 엉겁결에 한참을 뛰어가다가 문득 "어허, 내가 실수를 하였군 그래, 잘못은 바로잡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겠다"라고 하더니 비를 무릅쓰고 원래 자리에까지 돌아가 거기에서부터 다시 거드름을 피우며 걷기 시작했다. 허세만을 부리는 일부 지식인을 풍자하는 얘기다.  <鹿鳴>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