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세상 모든 건 변한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국제관계에서는 더 부연할 나위도 없다. 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선 미국과의 관계에서 보자. 일본의 수출 통제와 지소미아 처리 과정에서의 편향적 태도, 주한미군 주둔 비용 6조 원 요구, 트럼프 대통령의 날선 언어가 몹시 낯설다. 이제 가치 동맹의 대상이 아니라 강압적으로 눌러서라도 복속시키려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미국에 대해 정당한 국익을 따져야 한다고 하면 미국을 버리고 중국 쪽에 붙자는 것이냐고 몰아가는 이도 많고, 한미 관계에서 독자적 위치는 어차피 불가능한 현실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 지도층과 일반 국민 사이에 본능적으로 또는 의식, 무의식에 각인된 역사적 기억 탓인지 미국이라고 하면 좋은 점이건 나쁜 점이건 덩달아 답습하고 미국의 우산 속에서 벗어나면 국가 안보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고 여긴다. 조선시대 중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작은 중국’을 표방했듯이 지금 우리는 ‘작은 미국’에 목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리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당위성이 정치권에서 허울뿐이라는 걸 목도한다. 

중국의 위대한 부활을 꿈꾸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몽’이나 제국주의 일본의 기세를 되살리려는 아베 총리의 ‘세계웅비’를 모양새로도 배우려는 모습이 없다. 한심하게도 나라의 장래보다는 일단 우리 편을 결집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겠다는 ‘도토리 키 재기’식 편파적 행태만 거듭한다. 우리 여당이 ‘야당의 복을 타고 났다’거나 그 반대로 야당이 ‘여당의 복을 타고 났다’는 건 모르는 이가 없다. 여야 공히 온건파·강경파·중도파 모두 ‘누가 누가 더 못하나’ 게임에서 지지 않으려고 기를 쓸 뿐이라고 하면 과언일까. 담대한 미래 비전 제시는 어디에도 없다. 친일·독재·종북·주사파 등등 몇 개 단어들만 가득한 그 뻔한 주장들이 적대적 공존이라는 틀 안에서 고장난 레코드처럼 반복되는 걸 어찌 할 건가?

시진핑 주석이나 아베 총리의 주장이 옳다는 것도 아니려니와 그들의 리더십에 내재해 있는 독소적 요소까지 눈감아 주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국가 리더십의 다이내믹한 생명력을 보고 배워야 한다. 미국을 추종하다 보니 아예 임기 말에 나타나는 리더십 공백까지도 덩달아 답습하고 ‘작은 미국’ 행세를 하느라 장관 등의 청문회가 열리면 온갖 시시콜콜한 먼지까지 모조리 털어야 직성이 풀리는 걸 개선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직면한 오늘은 냉전시대가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 시대다. 어느 한쪽에 기댄다고 안전을 보장받기가 쉽지도 않겠고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기울면 반대급부로 감당해야 할 경제적 비용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커질 수도 있는 국면이다. 역사적 교훈은 이미 우리에게 충분하다. 

19세기 말 우리 주변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그들에서 붙은 대가는 36년의 식민 지배 속에서 참담한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러함에도 강대국에 붙어서 국가 안보를 운운한다는 건 역사의 교훈을 애써 외면하거나 아니면 또 다시 식민지 치하에서 이득을 보려는 매국노적 사고일 뿐이다. 중요한 건 전략적 사고다. 그리고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각오다. 미·중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북한과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을 품은 채로 빈궁의 골짜기에 고립돼 적대감을 키우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월감 속에 지독한 열등의식과 가해적 성향을 추스르지 못하는 일본의 피해망상이 분열적으로 작용하도록 반일만 외치는 것이 그리 신나는 일일는지. 

이제 우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생각하면서 무엇보다도 우리 내부로부터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참다운 보수의 정치가 조화되도록 국민부터 각성하는 일이다. 민주국가의 국민이라고 해서 항상 옳다고 자부할 건가? 한심한 여당과 야당이 개혁이니 물갈이니 하면 또다시 반복되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을 할 것인가 말이다. 일찍이 깨어 있는 국민의 단합된 힘이 미래의 우리를 바로 서게 한다고 했다. 그 정신을 되살리고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만사휴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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