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희망보다 절망 쪽에 서 있을 때, 인생의 추위에 어깨가 움츠러들 때 그리운 것은 역시 사람의 온기가 아닐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환해지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아무리 고달픈 현실이 있어도 지금 이 순간,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기쁜 일이 아닌가."

이 말은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에서 작가인 송정림 씨가 던지는 말입니다. 

망해 보면 압니다. 나를 가장 아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요. 내가 잘나갈 때는 밀물처럼 나에게 다가오던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경해서 다가왔다고 생각했지만, 내 끈이 떨어지고 나면 썰물처럼 사라지는 그들을 보면서 절망하는 것이 삶입니다. 

그러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 압니다. 누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말입니다. 아파 보면 압니다. 내가 건강할 때는 소홀히 대했던 바로 그 사람이 나를 간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른두 살에 수혈하다가 에이즈에 감염된 자디아 에큰다요라는 여성이 기나긴 투병생활 끝에 남긴 눈물겨운 글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절규합니다. "(…) 내가 원하는 것은 함께 잠을 잘 사람. 나를 두 팔로 껴안고 이불을 잡아당겨 줄 사람. 등을 문질러주고 얼굴에 입 맞춰 줄 사람. 잘 자라는 인사와 잘 잤냐는 인사를 나눌 사람. 아침에 내 꿈에 대해 묻고,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해 줄 사람. 내 이마를 만지고 내 다리를 휘감아줄 사람. 편안한 잠 끝에 나를 깨워줄 사람. /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람."

에큰다요의 이 절절한 소망이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사소한 것들이 아닐까요? 그래서 내가 건강할 때는 그 사람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오지는 않았을까요. 소중한 것은 저 산 너머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내 곁을 채우고 있는 것들, 바로 지금 내 곁에서 무심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이 에큰다요가 그토록 원하는 그 ‘사람’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나는 당신입니다」라는 책에 소개된 서문성 씨의 ‘작은 이야기 큰 깨달음’이란 글도 누가 가장 소중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영국의 한 출판사가 상금을 걸고 ‘친구’란 단어의 정의를 독자에게 공모한 적이 있었다. 일등으로 당첨된 글은 이것이다. ‘친구란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다’."

절묘한 답인 듯싶습니다. 절망은 절망으로만 끝나지는 않나 봅니다. 절망은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주기 때문입니다. 힘겨운 삶이 힘겨운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보이지 않던 ‘희망’의 끈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절망 속에서 발견한 진실의 눈과 희망의 끈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사랑의 위대함입니다.

「CEO 경영우언」에 고슴도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있다. 피곤하고 졸린 이들은 추운 날씨에 체온유지를 위해 서로 부둥켜안고 싶다. 그러나 가시가 찔러 하는 수 없이 떨어져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잠을 잔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추위에 떨던 이들은 어느 새 자기도 모르게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껴안았으나, 가시 때문에 떨어지곤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마침내 둘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도 가시에 찔리지 않는 적정거리를 찾아내게 되었다."

‘가시’는 나에게는 훌륭한 방패이지만 동시에 너에게는 흉기입니다. 가시는 너와 나의 ‘다름’입니다. 그래서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 라며 다투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고슴도치의 삶을 통해 알았습니다. 너와 나의 다름, 즉 너와 나의 가시를 없애지 않고도 그 가시에 찔리지 않는 지혜를 말입니다. 

죽어가는 에큰다요가 그토록 소망하는 그 ‘사람’이 지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을 깊은 존경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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