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지난주 옛 서대문형무소 인근에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집’이 마련됐다. 3년여 전 옥바라지 골목이 철거된 후 ‘기억투쟁’이 일어났고 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옥바라지 골목은 서대문형무소 맞은편 골목에서 투옥된 독립투사들의 어머니나 누이, 동생들이 온갖 고생을 하면서 번 돈으로 사식을 넣거나 하는 고된 역정을 담고 있는 곳이다. 인천 중구의 옛 감리서 옥에 갇혔던 김구 선생에게 어머니 곽낙원 역사는 식모살이를 하면서 따뜻한 밥 한 끼를 넣어주려 했던 것처럼 그곳에서는 곽낙원 여사는 아들을 위해 삯바느질을 4년간이나 했다(김구 선생은 안악 사건으로 이곳에 수감됐다가 인천 분옥으로 이감돼 인천 축항 공사장에서 노역했다).

 작가 현진건은 장편소설 「적도」에서 "독립문을 지나서부터 형무소 초입까지 형무소 시식차입소, 감옥밥 파는 집, 형무소 피고인 차입소, 변당(도시락) 차입소 간판들이 지붕을 디디고 선 것만 보아도 어쩐지 으스스해진다"라고 묘사했다. 

 일제가 독립투사와 정치사상범을 체포하는 족족 보냈던 그곳에 얽힌 사연들은 독립운동 역사의 또 하나의 단면이지만 오늘날 그곳에 세워진 재벌회사의 분양한 아파트 모습만큼이나 잊히고 우리의 기억 저 멀리 사라졌다. 인천 중구의 옛 감리서 옥 그 자리에도 한진그룹이 세운 아파트가 자리 잡았고, 곽낙원 여사 등 옥바라지 했던 가족들에 관한 자료나 기억이 없어진 지 오래다.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인천 중구청이 앞장서서 김구 선생의 치하포 사건이나 감옥 생활, 곽낙원 여사의 옥바라지 자취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인천 내항 재개발에 있어 김구를 기리는 광장이나 기념관 등이 계획 중이므로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지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사실이다. 한편 최근에 「편지로 읽은 현대사」(한겨레신문 정용욱)의 백범 김구 북행과 남북협상 편에 실린 내용에서 참고할 만한 것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으면 한다. 김구 선생이 김규식과 함께 북한의 김두봉과 김일성에게 보낸 서한이다. 

 "(전략) 남이 일시적으로 분할해 놓은 조국을 우리가 우리의 관념이나 행동으로써 영원히 분할해 놓을 필요야 있겠습니까. 인형이녀, 우리가 우리의 몸을 반 쪼개낼지언정 허리가 끊어진 조국이야 어찌 차마 더 보겠나이까. 가련한 동포들의 유리개걸하는 꼴이야 어찌 차마 더 보겠나이까. (중략) 동포의 사활과 조국의 위기와 세계의 안위가 순간에 달렸거늘 우리의 양심과 우리의 책임으로써 편안히 앉아서 희망 없는 외력에 의한 해결만 꿈꾸고 있겠습니까."

 남북협상을 갈망하는 김구 선생은 이 서한의 연장선에서 유엔소총회가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결정하자 그 결의가 "한국 문제에 대한 유엔 결정에 위배되는 남한 단독선거를 실시하기로 한 것은 민주주의의 파산을 세계에 선고한 것’이라며 ‘결의안은 일국 신탁을 강요하는 것이고, 38선을 국제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동족상잔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구 선생이 이 무렵 보여준 정세 인식이나 견지한 노선에서 이미 남북 분단은 필연적으로 외세의 종속을 초래할 것이고 그것이 결국에는 동족상잔의 피 어린 역사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단호하게 역설해 이를 막아야 한다는 절절한 염원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지난 18일 미국의 척 슈머 원내대표 등 민주당 상원 지도부 8명이 대북 정책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는 보도다. 주 내용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린 지 2년이 다 돼 가도록 실행 가능한 외교적 과정을 발전시키지 못한 점을 염려한다"면서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진지한 외교적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화염과 분노’ 위협이나 그 외 파멸적인 전쟁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는 북한에 대한 ‘핵 강압’ 시도를 재개하는 것이 협상 테이블보다 나은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면 심각한 오산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범 김구의 정신이 새롭게 조명되고 그 분의 발자취에 대한 역사적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때에 해방 정국에서 보여준 인식과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보여주는 성찰이 한층 불확실해지는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를 손꼽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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