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는 통상 적극적인 행위에 의해 실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의든 아니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범죄가 성립될 수 있는데 이는 안전·보호·돌봄 등의 의무나 역할을 맡은 주체들에게 특히 해당된다. 형법에서는 이를 ‘위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해 위험발생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않으면 그 결과에 의해 처벌한다’라는 이른바 부작위범(不作爲犯)의 성립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살인은 흉기나 둔기를 사용하는 적극적인 작위(作爲)인 경우가 많고 부작위는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아동의 권리와 복지 측면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남녀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다툼이나 이기심 등에 기인해 양육에 대한 적극성을 상실하고 아이에 대한 소홀, 방임, 유기 등의 행위가 발생한다면 이는 범죄가 된다. 아동을 매매하거나 성적 학대를 가하고 신체 손상, 정서적 학대, 공중 관람, 구걸행위 등을 가하는 것만이 범죄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18세 미만의 사람을 광의의 아동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보호자 등은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지원을 비롯해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감독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아동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양육, 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를 아동복지법은 방임으로 규정해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처벌 조항으로 두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인천지법에서 어린 딸을 놓고 ‘어린부부’가 벌인 끔찍한 방임 행위를 두고 내린 중형 선고는 이 같은 부진정 부작위범(不眞正 不作爲犯)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울리고 있다. 당시 재판부는 생후 7개월 된 딸에게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여러 날을 방치해 숨지게 한 남편 A(21)씨에게는 징역 20년, 아내 B(18)씨에게는 최대징역 15년을 각각 구형했다. 

재판부는 부작위범에 있어 살인의 고의성은 목적이나 계획적 범행 의도가 없어도 법적 의무를 이행하면 그 결과 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었음을 예견하고도, 그 결과 발생을 용인하고 이를 방관한 채 의무 이행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으면 충분하다고 봤다. 이들은 피해 아동이 깨끗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여러 날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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