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팀이 9일 한국산업보건학회지에 제출한 ‘도금 사업장 근로자에게 발생한 시안화수소 급성중독과 작업환경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남동산단 도금업체 근로자가 숨진 사고는 열악한 작업환경 등 구조적인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고인은 입사한 지 3주 된 20대 초보 근로자였다. 맡은 업무도 제품 건조와 포장인데, 그날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생전 처음 도금 작업에 투입됐다 사고를 당했다. 작업 당시엔 호흡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련 지식이 전무한 근로자가 적절한 보호장비 없이, 최소한의 안전교육과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위험한 작업 과정에 투입된 것이다. 

같은 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정규직 사원 두 명 정도가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작업하다 참변을 당한 입사 3개월의 협력업체 비정규직 김용균 씨 사례와 다를 게 없었다. 소위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16일 시행된다. 법의 보호대상을 넓히고, 책임의 주체와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고용부 장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 현장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도록 했고, 원청업체 대표이사에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까지 부과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개정 산안법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경제 활성화와 안전사고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가능성이 높다. 기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작업중지 명령’을 이렇게 모호한 판단 기준과 철회하기 어려운 절차로 벽을 쌓으면 (위험하고, 힘든) 전통 제조산업은 국내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원청 사업주의 벌을 무겁게 한다고 산업재해가 사라지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러니 법 시행을 앞두고 일부에선 도금 작업 노동자를 별정 비정규직으로 뽑는 또 다른 꼼수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해결책은 책임 전가와 처벌이 아닌 예방에 있다. 모든 산업안전사고는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서 시작이 되고 끝이 난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예방교육과 안전한 작업환경을 위한 프로토콜 구축이 제일 중요하며, 이것을 어떻게 달성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치권과 공무원들은 고민없는 단세포식 규제 마인드와 영혼 없는 주먹구구식 전시행정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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