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이 다가왔다. 주요 배급사들은 설 연휴 극장가를 향해 포문을 열고 경쟁 준비를 마쳤다.

 올해 설 연휴에는 한국 영화 ‘3파전’이 예상된다. 정치드라마를 비롯해 다채로운 색깔의 코미디영화도 포진해 있다. 설 연휴 대표 개봉작 3편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정보기관’을 소재로 한다는 것이다.

 FBI나 CIA 등이 자주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그러하듯 한국 영화에서도 국가정보기관은 단골 소재로 쓰이곤 한다. 설 연휴를 앞두고 같은 날(22일) 동시 개봉하는 3편의 영화가 모두 국가정보기관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특유의 묵직함과 절제된 이야기 전개로 풀어낸 ‘남산의 부장들’, 전직 국정원 암살요원의 제2의 인생 찾기 프로젝트를 담아낸 코믹액션물 ‘히트맨’, 동물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국가정보원 에이스 요원의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 주:사라진 VIP’ 등 3편의 작품은 서로 다른 농도와 무게감으로 설 연휴 극장가를 찾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매력을 선보일 전망이다.

# 남산의 부장들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1979년 10월 26일 밤,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 저녁 만찬장. 절대적 충성으로 ‘각하’를 보필해 온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 분)’은 자신이 지니고 온 독일제 발터 PPK 32구경 권총을 꺼내 박 대통령을 암살한다.

 사건 40일 전, 미국에서는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이 미국 하원 청문회를 통해 정권의 실체를 폭로한다.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과 김규평은 이를 막기 위해 나서게 되고, 박 대통령 주변에는 충성파와 반대파들이 뒤섞이게 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90년 발간돼 한일 양국에서 52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공전의 인기를 기록한 김충식 작가의 동명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1970년대 군사독재시절 국내외 정치공작을 주도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전신)의 부장들과 이들이 주도한 정치 이면사를 그린 원작 소설을 근간으로 주요 인물을 추려 재구성했다. 

 이 영화는 실제 인물들의 외모와 말투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덕분에 영화 속 캐릭터들은 허구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짐작이 어렵지 않다. 이로 인해 영화는 관객 각자의 시선과 해석, 상상력의 여지를 확보하면서 정치적 평가 또한 미룰 수 있게 됐다. 또 관객 대부분이 잘 알고 있음직한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을 결말을 먼저 보여 주고 과거로 돌아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플래시 백(Flash Back)’ 기법을 사용해 사건의 결말보다 과정과 이유에 집중했다. 

 묵직한 연기력으로 매 작품마다 신뢰감을 주는 배우 이병헌을 비롯해 이성민·곽도원·이희준·김소진 등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로 캐스팅 라인업을 완성했다. ‘남산의 부장들’은 2000년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로 데뷔해 ‘파괴된 사나이(2010)’, ‘내부자들(2015)’, ‘마약왕(2017)’ 등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우 감독은 "권력의 정점에서 막강한 위세를 과시하던 2인자가 왜 대통령에게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는지, 그 사건이 지금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며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심리묘사를 통해 우리 현대사의 큰 변곡점이 된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 히트맨

 어렸을 적 부모를 잃은 뒤 천애고아(天涯孤兒)가 돼 버린 ‘준(권상우 분)’. 그는 타고난 비범한 능력 덕에 국가정보원 요원이던 ‘덕규(정준호)’를 통해 비밀 프로젝트 ‘방패연’ 소속 살인병기로 거듭난다.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과거를 지우고 자신이 오래도록 꿈꿔 왔던 웹툰 작가로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은 아내에게 바가지 긁히기 일쑤이며, 딸에겐 ‘능력 없는 아빠’일 뿐이다.

 연재하는 웹툰마다 조회 수는 만년 꼴찌에 악플에만 시달리던 주인공 ‘준’. 하루는 술을 잔뜩 마시고 과거 국가정보원 살인병기 시절 알게 된 국가 1급 기밀을 웹툰에 그리고 만다. 그렇게 술김에 그린 웹툰 ‘암살요원 준’은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끈다. 대박의 기쁨도 잠시, 웹툰의 존재를 알게 된 국가정보원과 테러리스트는 준의 행방을 찾으려 혈안이 된다.  

 이 영화는 실사와 웹툰, 애니메이션 등을 적절히 섞은 코미디 작품이다. 기존 코믹·액션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비주얼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특히 암살요원 준 역을 맡은 권상우의 액션은 눈부시다. 섬세하고 화려한 몸놀림으로 테러리스트를 일망타진하는 모습에서 ‘권상우표 액션’이 진가를 발한다.

 등장인물을 소화한 배우들의 캐미도 볼만하다. 권상우는 액션과 코미디 두 장르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특히 액션 장면은 경쾌하고 속도감이 있어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정준호는 특유의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 이이경과 황우슬혜, 아역 이지원 등도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영화 ‘히트맨’은 2009년 개봉한 영화 ‘내 사랑 내 곁에’를 각색한 최원섭 감독이 연출했다. 최 감독은 "개인적으로 코미디영화를 사랑하고, 이번에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웃길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특히 주인공에 권상우를 일찌감치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최 감독은 "개인적으로 코믹과 액션 둘 다 되는 배우는 오직 권상우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미스터 주:사라진 VIP

 영화 ‘미스터 주:사라진 VIP’는 국가정보국 최고의 요원인 ‘태주(이성민 분)’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온갖 동물의 말이 들리면서 펼쳐지는 사건을 그린 코미디물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가는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태주는 아내와 얽힌 아픈 과거 때문에 동물을 혐오한다. 어느 날 태주는 승진을 위해 VIP 판다 경호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판다는 사라지고, 판다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결국 사고를 당한다. 

 사고 이후 태주는 온갖 동물의 말이 들리는 신기한 능력을 갖게 된다. 그는 이런 현실을 믿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은 그런 태주를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국가정보국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태주는 판다의 행방을 아는 군견 ‘알리(목소리 신하균)’와 함께 판다를 찾아 나선다. 

 동물과 사람의 교감을 넘어 가족애까지 다룬 영화 ‘미스터 주’는 설 연휴를 겨냥한 가족코미디영화다. 한때 동물을 혐오하던 태주가 동물과 함께 하며 서로 마음을 열고 교감하는 과정이 서사를 관통하고 있다. 영화 속 동물들이 보여 주는 특유의 따뜻함과 귀여움, 사랑스러움 등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을 ‘뭉글뭉글’하게 만든다.

 신하균·유인나·김수미·이선균·이정은·이순재·김보성·박준형 등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동물 목소리를 맡아 극의 즐거움을 극대화시킨다. 

 이 영화는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다룬 작품인 만큼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도 꼬집는다. 태주의 딸이 ‘목숨을 다해 사람을 구하는 동물은 있지만, 목숨을 다해 동물을 구하는 사람은 없다’는 대사가 와 닿는다.

 배우 이성민은 완벽하고 딱딱한 국정원 요원이 아닌 편안한 아빠 같은 요원을 소화해 냈다. 군견 알리와 호흡도 가히 ‘찰떡궁합’이다. 

  우제성 기자 wjs@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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