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끝이 있다면 어디일까? 흔히 부부가 갈라서는 이혼을 결혼의 종말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영화 ‘결혼 이야기’는 이혼의 과정과 파경 후 자녀를 매개로 이어지는 관계까지도 결혼의 연장이라 보고 있다. 그래서 헤어짐을 다루는 이 영화의 제목은 ‘이혼 이야기’가 아닌 ‘결혼 이야기’다. 

노아 바움벡 감독의 자전적인 스토리가 녹아 있는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이 추천한 2019년 최고의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보름 앞으로 다가온 2020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여우주연상의 막강한 수상작으로 거론될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인 수작이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따뜻한 사람,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와 끝까지 놀아주는 좋은 엄마. 남편의 똥고집도 잘 이해해 주는 그녀는 집안일과 정리정돈에는 서툴지만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그녀의 이름은 니콜이다. 찰리는 깔끔하고 정리정돈을 잘 한다. 옷도 단정히 입는 그는 아빠 역할도 좋아해서 잠투정이 많은 아들을 잘 토닥인다.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찰리는 직업적으로도 성공한 연극 연출가이다. 

10년 전, 잘나가는 배우와 촉망받는 신예 연출가로 만난 두 사람은 첫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 후 무리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듯 보였으나 최근 잠정적으로 이혼에 합의한 상태다. 어린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이자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아직은 남아 있는 두 사람은 조용히, 이상적으로 이혼하고자 했다. 

결별 후에도 친구로 남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그들의 바람은 이혼변호사가 개입하면서 산산조각 났다. 정확한 이혼 사유조차 몰랐던 남편은 아내의 변호사를 통해 까닭을 듣게 되고, 아들의 양육권 문제를 두고는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마저 중대한 귀책 사유로 거론하며 진흙탕 싸움을 해야 했다. 

그러나 격렬했던 이혼 과정과는 별개로 집에 오면 책을 읽어 주고 숙제를 걱정하는 보통의 부모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 ‘결혼 이야기’는 부부의 이혼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누구도 다치지 않는 평화로운 이혼을 바랐지만 마음속에 쌓아 둔 솔직한 감정들이 폭발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원망하고, 후회하는 과정을 통해 남녀의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찬찬히 펼쳐내고 있다. 

사랑의 감정은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5대 5로 공평하게 주고받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누군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 결과 한 사람의 인내가 더 많이 요구된다. 

이를 당연하게 여길수록 감정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니콜과 찰리의 결혼도 그랬다. 한 사람의 성공은 다른 쪽의 희생 속에서 커져 갔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느새 희생의 불균형에 무감각해졌다. 

영화는 파경을 통해 인간관계와 결혼의 본질에 다가서고 있다. 어느 한쪽의 잘못을 부각하거나 두둔하지도 않는다. 양쪽 모두의 감정을 끌어내어 부부의 이야기에 천천히 동화시킨다. 

이혼이라는 소재를 현실적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아픔을 겪고 성장한 두 사람의 미래를 따뜻하게 응원하며 마무리한다. 

필모그래피의 최정점을 찍은 애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 또한 깊은 울림으로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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