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목 PEN리더십 연구소 대표
홍순목 PEN리더십 연구소 대표

"개인적인 편견과 돈에 대한 탐욕이야말로 법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해악들이며 일단 이런 해악들이 득세를 하게 되면 정의를 파괴해 버림으로써 즉시 사회를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한 대목이다.

유토피아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최첨단 정보사회와는 더더욱 맞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정의를 지키고 사회를 바로 세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대를 초월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정의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운 사회다. 합리적인 이성에 근거해 도출된 결론에 수렴하고 스스로를 이에 동일시하는 시대는 지났다.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에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이클 샌델 교수는 명확하게 정의가 무엇인지 단정 짓지 못한다. 단지 저자는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정의 그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못한 정의롭지 못한 내용이 끼어 있을 수 있다는 화두를 던지고 있을 뿐이다. 

전통 미디어와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등 기존 권력에 대한 불신도 정의의 개념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왜 하필이면 청와대의 주요 인사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지는 이 시점에 검찰의 주요 간부들을 좌천성 보직이동을 감행하고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채우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 최종 인사권자는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독점함으로써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검찰권력을 어떻게 개혁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국회는 토론과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만들어 내지 못했다.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여야는 물론 청와대까지 나서서 불만을 표출하면서 적폐 운운하고 있다. 전통 미디어 역시 친여, 친야의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는 뉴스와 논평을 함으로써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공무원의 선거 개입, 공직자 윤리를 위반한 사항이 명백히 드러나도 법과 절차에 따르기보다는 정치적인 쟁점화와 진위 논쟁을 벌임으로써 지지자를 향한 여론 정치만에 집중한다면 이는 사회의 근간을 해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장소를 달리하며 서로 상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편은 범죄를 저질러도 정의이고 상대편은 좋은 일을 해도 불의라는 진영론에 근거해 국론이 끊임없이 분열하고 대립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유토피아의 저자가 우려한 바 사회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에 이르게 한다.

국가 경제적 토대가 든든하다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이 더 큰 도약을 이끌어 내기 위한 몸살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 하락과 부진한 경제지표를 보면 사회 정치적인 혼란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없다. 국내 상황과 국제 정치경제 흐름의 변화를 본다면 향후 더 나아질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김정은은 대한민국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전통우방이라고 여겼던 미국의 트럼프는 자국 우선주의를 공공연히 주장하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가뜩이나 침체된 경제의 장기불황이 우려되고 있다. 일본과의 대립구도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로 부산한 중에 지난달 말 EU의회가 영국의 브렉시트를 의결했다. EU에 대한 재정적인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영국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다. 미국경제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영국 국민은 브렉시트 확정으로 환호했지만 제3의 국가들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특히 수출을 통해서 경제성장을 일궈온 우리나라에도 썩 좋을 것이 없는 국제 흐름임은 분명하다.

지구촌 경제공동체를 통해 번영을 구가해온 국제질서가 이제 경제대국을 중심으로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의 살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국가 운영을 책임지는 정부와 여당의 정의관이 의심 받고 국민의 분열 조장을 넘어 분열의 한 축으로 동참할 때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사회 붕괴와 국가 해체의 주역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를 정상화하기 위한 전환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4·15 총선을 앞두고 늘어나는 정당 숫자만큼이나 분화는 시대적인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화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날지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 하물며 갈등을 동반한 분열은 더 방관할 일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를 자처한다면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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