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코로나19 출현을 세상에 처음 알린 중국 의사 리원량이 아내에게 남긴 유서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말을 했다’라는 문장을 묘비에 써달라고 했습니다. 유서 내용이 무척이나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사람을 살리려고 애쓴 그를 체포해 ‘괴담 유포자’라는 멍에를 씌우고 강제로 ‘잘못했다’는 반성문에 서명까지 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고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요. 임신한 아내와 다섯 살 난 아들을 남긴 채 이 비운의 34살 청년 의사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에게서 감염된 코로나로 인해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정직’이 ‘거짓’에 의해 짓밟히는 세상, ‘약자’가 ‘강자’를 위해 또는 ‘진실’이 ‘권력’을 위해 눈을 감아야만 하는 현실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재앙으로 몰아넣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감동하곤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감동할 일이 많을수록 행복한 사람이란 뜻이지요. 거짓은 ‘나’를 위한 행위지만 정직함은 ‘너’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입니다. 강자가 그 힘을 계속 보존하려는 것은 ‘나’를 위한 행위이지만, 약자가 온갖 협박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외치는 것은 ‘너’를 위한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사실 정직해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용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고발을 함으로써 ‘나’에게 온갖 비난과 협박이 쏟아지고, 배신자라는 낙인까지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그 고초를 감수하면서 정직하면 언젠가는 어김없이 ‘위대함’이란 선물을 받게 됩니다. 

미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링컨을 꼽곤 합니다. 「감동 가득 한 뼘 이야기」에 그의 일화가 나옵니다. 가난했지만 늘 명랑하고 정직했던 링컨이 열아홉 살 때였습니다. 상점에서 일하던 그가 퇴근 시간이 돼 돈을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을 계산해도 3센트가 남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날 낮에 8달러어치 물건을 샀던 부인이 돈을 더 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2시간 정도를 헤맨 끝에 간신히 부인의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잘못 계산해서 3센트를 더 받았습니다. 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부인이 고맙다며 3센트를 링컨에게 주려고 했지만 받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였습니다. 링컨이 종이에 찻잎을 조금 싸서 길 건너 주택가로 갔습니다. 집주인에게 그 찻잎을 건네주며 말합니다.

"죄송해요. 실은 오늘 일이 다 끝난 후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 아저씨에게 찻잎을 조금 적게 드린 것 같아요. 그래서 늦었지만 덜 드린 만큼 찻잎을 가져왔어요."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용서를 구합니다. "아저씨, 바쁘다는 핑계로 제가 실수를 가끔 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브라이언 카바노프가 쓴 「꿈꾸는 씨앗」에도 링컨의 정직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십 대에 동네 우체국장으로 있던 우체국이 문을 닫자, 변호사의 길을 걷던 그에게 어느 날, 누군가가 찾아와 자신이 우체국에서 17달러를 돌려받지 못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조용히 사무실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끈으로 묶인 빛바랜 봉투 하나를 꺼내 그 안에 들어있던 17달러를 건네주었습니다. 수년 동안 그의 돈을 안전하게 보관했던 거지요.

링컨의 이런 정직함이 결국 노예제도를 없애고 미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높이는 ‘위대함’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요?

34살 젊은 의사 리원량이 죽어가면서 남긴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말을 했다’는 말이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만든 감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서 절망에 빠진 환자들의 생명을 되찾아주는 일을 많이 보는 것일 겁니다. 그러려면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리원량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정직한’ 입을 틀어막는 비열한 행동들이 사라져야만 가능합니다. 리원량의 명복을 빕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